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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n 23. 2020

손때 묻은 것들

오래된 물건엔 이야기가 담겨있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떤 사람은 구질구질하다고 또 어떤 사람은 알뜰하다고 한다. ‘버려야 잘 산다’는 말도 듣지만 어쨌든 난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니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정리정돈이 안될 땐 ‘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언젠간 필요할 텐데.......’라는 생각이 이내 차오르니 고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언제 사용하게 될지 기약도 없으면서 바느질할 때 생긴 조각 원단부터 엄마가 신혼여행 때 입으셨던 옷에서 떼어낸 빈티지 단추들, 이제는 보기도 어려운 오래된 형광등 전등갓까지 내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니 펼쳐놓으면 아마 오만가지도 넘을 것이다.


가구며 소품도 엔틱을 좋아하여 엔틱 샵을 기웃기웃기웃! 나는 왜 이렇게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건 애초에 싫다. 네모 반듯! 모던함도 내 취향이 아니다. 조금 가볍게 살 필요가 있겠다 싶어 미니멀리즘의 유행에 편승해 볼까 싶었지만 난 아무래도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도 답답해 싫지만 너무 여백이 많은 것도 춥게 느껴지는 난 맥시멀리즘을 지향한다.






할머니께 물려받은 양털저고리와 배자

      

 

할머니의 물건

큰엄마는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이 많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중에서 제일 갖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할머니의 손재봉틀이다. 나무로 된 뚜껑이 있는 그것은 지금까지 눈여겨본 것들 중 가장 예쁘다. 우리 할머니를 닮아서일까? 그 재봉틀이 갖고 싶어 큰엄마를 엄청 졸랐지만 “나중에~” 란 말씀만 반복하셔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재봉틀을 가져가라 신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누군가에겐 그저 낡은 고물 덩어리지만 내겐 귀한 보물이다. 두근두근!



100년도 더 됐을법한 손재봉틀



“큰엄마! 재봉틀 어디 있어요?” 천으로 만든 덮개에 씌어있던 그것은 손볼 곳이 많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만져보고 돌려보고 정말 감개무량하다. 어릴 적 할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아들 선호 사상이 크셨던 분이라 할머니의 情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재봉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할머니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들들들들~~~ 들들들들‘

‘사람은 가고 물건만 남았구나....... ’     


그러고 보니 내겐 할머니께 직접 받은 미니 소반 하나가 있다. 쟁반보다도 작아 귀한 손님이 오시면 1인 찻상으로 내놓는 상인데 초등학교 시절 어디서 그런 용기를 낸 건지 “할머니 이건 저 주세요~” 했더니 “그래! 그건 내가 오래전에 500 원주고 산거다. 잘 간직해라~”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생하다.  


   

할머니께 물려받은 쟁반보다 작은 찻상과 오래된 그릇(그릇장 아래)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발견하신 큰엄마는 그릇장에서 그릇들을 꺼내시며 “다 버릴 거야~” 말씀하신다. 난 눈과 손을 빨리 움직이며 비록 짝이 없지만 오래된 듯 한 그릇들을 챙기고서야  문을 나서는데 쓰레기로 보이는 비닐봉지 속으로 시선이 멈춰 선다. “앗! 저거~~~ 저거 제가 가져가도 되요?” 부리나케 봉투를 풀어헤치고 꺼내보니 곱게 수 놓여진 ‘자수 보’다. 얼룩덜룩 지저분해진 터라 그걸 가져가서 뭐하냐는 말씀이 뒤따랐지만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내가 회생시켜주겠노라’ 다짐하고는 신이 나서 집으로 가져왔다.



빈티지 자수보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던 낡은 자수 보부터 살려야겠다 싶어 뜨거운 물에 과탄산소다를 잔뜩 풀어 담가 놓고는 다음날 세탁했더니 움하하하! 이불만 한 새하얀 광목에 빈티지한 색실이 곱게 드러났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봐도 그 예쁨에 반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좋아 큰엄마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하니 여간 좋아하시는 게 아니다. 당신이 처녀 적에 조금씩 수놓은 것을 딸과 며느리는 관심도 없는데 조카인 내가 버려지지 않게 잘 써준다니 고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처럼 오래된 물건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랬다. 물건만 남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적어도 한 번은 선택받았던 것들에겐 이야기가 담겨 역사가 된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친구는 갖고 있던 물건을 다 버리고 새 물건으로 집안을 채운다. 깨끗해서 좋기는 하지만 어째... 과거 없이 현재만 있는 것 같아 헛헛함이 느껴졌다.

손때 묻은 물건들을 닦고 정리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뇨, 당신은 잃은 게 아니었어요. 난 바로 여기 있었어요. 또 어쨌든 당신은 날 사랑했어요.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여보.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죠. 가버린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줄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질 수도 없고, 같이 빙빙 돌며 춤을 출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게 환해지죠. 추억 말이에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예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꾸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어요.     에디의 천국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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