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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l 11. 2020

라디오를 샀다

침실에서 휴대전화를 몰아내고 싶었다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는 로터리 TV 앞에 앉아 만화영화 ‘캔디캔디’와 ‘주말의 명화’를 보여 자랐고, 대학 때는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를 너무나도 열심히 보았다. 못 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아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라도 방영을 하게 되면, 열일 제쳐놓고 봤다. 좋아하는 배우는 왜 그렇게 많은지.......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TV 보는 것은 먼 일이 되었다. 아이에게 TV는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허락된 시간이 있었으니, 아이를 재우고 난 후가 되겠다.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는 명목으로 TV 앞에 앉았는데, 밤 시간의 프로그램이 대부분 그렇듯 야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함정이 있었다. "아~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더 이상 건강에도 좋지 않은 야식을 끊을 필요가 있었다. 방법은 TV, TV를 보지 않으면 될 것 같았다.      

          





복층의 우리 집 1층엔 TV가 있는 거실이 있고 2층엔 침실과 욕실이 있다. 아이를 재우고 난 후 1층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그만이기에, 거실로 내려가 TV를 켜는 대신 침실로 들어가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후 만난 동생이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가 뭐냐며 재미있는 드라마를 알려준다. ‘아뿔싸!’ 드라마에 약한 나는 무심한 듯 들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때 번뜩 찾아낸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휴대폰의 DMB 기능이다. 침실에서 책을 보는 남편 옆에 앉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휴대전화에 슬그머니 이어폰을 장착하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휴대전화의 끈끈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침실 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고나 할까? 덕분에 야식 먹는 일도 사라져 나름 만족하며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TV 보는 시간에 더해 갖가지 검색을 하며 잠자기 전까지 휴대전화와 한 몸이 되어갔고, 마치 탯줄로 연결되어있는 엄마와 아기처럼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쁜 습관은 어찌나 빠르게 자리 잡는지 이런 나 자신이 못마땅하여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휴대전화와 멀어져!’ 고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엔 알람 기능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를 등교시켜야 하는 나는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침실까지 갖고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낮은 사양 덕분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도 않았지만 잠자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마주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침실에서의 그것은 시계 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설치하는 앱이 늘어갔고, 순식간에 휴대전화와 한 몸이 되어 가는 내가 보였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전의 나를 생각해보니, 잠자리에 음악과 책이 있었다. ‘앗! 라디오!!!’ 


소비를 줄이기 위해 1층 주방 쪽에 있는 라디오를 침실로 옮길까 했지만, 가장 중요한 알람 기능이 없어 탈락! 내가 필요한 ‘라디오의 조건’은 이렇다.

1. 알람 기능이 있을 것

2. 예쁠 것

3. 작을 것


열심히 라디오 겸 알람시계를 검색했다. ‘알람시계는 아날로그지.’ '따르릉~~~~'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레트로 감성의 동그란 탁상 시계를 찾았지만, 라디오 기능이 없었다. 다시 한참을 검색 끝에, 작고 예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과 알람은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 기능과 라디오 기능까지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아날로그 감성에는 벗어났지만 작고 예쁜 것이 맘에 들었다. ‘그래! 너로 결정했어!’



左_라디오를 들었을 때(^^)   /  右_현재 잠자고 있는 라디오(ㅜ.ㅜ)


큐브 모양의 라디오를 받자마자 설명서를 정독하고 세팅을 했다. 드디어 자야 할 시간. "이제부터 잠자리에 휴대폰은 두지 않을 거야~” 아무도 묻지 않은 말을 내뱉고는 침실 밖 서랍장 위에 휴대폰을 놓았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책을 펼쳤다. 덕분에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 업그레이드된 휴대전화가 내 손에 들어왔고, 할 수 일은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슬그머니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눈이 돌려졌다. 설치하는 앱은 늘어만 갔고 브런치도 한몫했다. 미국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을 보기 위해 시작한 넷플릭스 세계는 보지 못했던 영화와 드라마로 또 다른 세계를 접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새로 구매한 라디오는 충전도 하지 않은 채 수납장의 한편에서 멈춰있었고,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누가?' '내가.'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아침에 대한 부담까지 사라졌으니, 시간 알람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지 7개월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와는 더 친한 사이가 되었으니 수면에 문제가 생겼다. 잠자고 있는 라디오를 충전해야 하고, 다양한 앱을 삭제해야 하며, 휴대전화와 멀어질 필요가 있다.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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