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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l 19. 2020

'당근'을 아시나요?

내 물건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올해 초, 지역의 중고 거래 마켓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고나라와는 다르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휴대전화에 앱을 설치했다. 집안 정리를 하며 버릴 것과 나눔 할 것, 판매할 것을 분류하고는 물건을 올렸다. 지역의 온라인 마켓이라고 들었기에 우리 동네 누군가 앱을 만든 줄 알았는데, 경험하고 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지역에서 거래가 쉽도록 하는 것이 장점인 온라인 벼룩시장이다. 


처음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눔 하거나 저렴한 값에 올리면 여러모로 좋을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거래 품목은 돌솥 세트였다. 남편과 아이에게 맛있는 돌솥밥을 지어주겠다고 구매했지만,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릇장에 모셔둔지 2년이 지난 것이다. 도무지 사용할 것 같지 않아 세트에 1만 5천 원에 올렸더니 바로 판매가 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신이 났다. 포장할 필요도 없고 택배사를 통하지 않아도 되니 번거로움 또한 없었다. 


무료 나눔은 또 어떤가?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하는 대신 당근 마켓에 올려보니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전해지는 것도 좋았다.(기증받은 물건들을 브랜드를 기준으로 삼아 비싸게 핀 매 하는 아름다운 가게의 구조가 맘에 들지 않기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거래가 성사되자 마켓 앱을 쳐다보는 횟수가 늘어났고, 필요한 물건을 찾으면서 키워드를 등록해 알림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설정해 놓은 알림 태그는 이렇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한 칸짜리 엔틱 옷장이 말도 안 되는 값에 거래된 것을 발견한 후 #엔틱, #원목을 키워드로 등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어린이 키 성장에 좋다는 얘기에 #트램펄린, 창고 공사 중에 청소기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업소용 청소기, 원목으로 된 아이 책상 의자가 딱딱해 #시디즈 링고, 서점 화장실 세면대를 만들기 위한 #콘솔, #수납장,  서점에 설치하고 싶은 #실링팬, 그리고 최근에는 너무나 갖고 싶은 자동차 #PT크루저까지.

 '당근! 당근! 다다다 다당근!'  



크라이슬러 PT크루저가 갖고 싶어 종이로 만든 PT크루저. ^^ 이게 아니야~~



뒤늦게 확인한 덕분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일이 잦아지자 알림 소리가 올리면 빠른 확인을 실천했다. 보통은 스킵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 거래가 성사된 아이 의자는 2년 정도 사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태라 뿌듯하기까지 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키워드를 삭제하는데 새 알림이 올라온다. 수납장 2개를 판매한다는 글이다. 남편에게 보여주며 "이거 서점에 놓고 물건 정리하면 좋겠지? 어때?" 아.. 빠른 결정이 필요한데 남편은 보고만 있는다.


 "어때? 사? 말아?" 남편의 대답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사러 갈 수 있어요~" 긴 말을 하면 후다닥 판매될 것 같았기에 짧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이 누군가 메시지를 보낸 흔적이 보였다. 잠시 답변을 기다리는데 판매자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 오실래요?" 빙고!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무슨 경기에서 이긴 사람처럼 난 승리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게 뭐라고~~~' 결국 난 수납장 2개를 자동차에 꾸역꾸역 실어왔고, 원목 스툴도 하나 들여왔다. (서점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근을 끊을 필요가 있겠어. 이건 뭐 거의 늪이야 늪.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하면서 덧붙인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함이야~" '나만 이런 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키워드는 삭제했는데도 알림은 계속되고 있다. 혹시나 내가 올린 물건에 대한 문의인가 싶어 쳐다보는 나는, 이 늪에서 빠져나와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휴대전화와 멀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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