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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n 02. 2020

별것 아닌 것을 별것으로
빛내주는 사람

안녕! 리연?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가 오래 남는다며, 학교 다닐 때 되도록 많은 친구를 사귀어 두라고 배우며 자랐다.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꼭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받아줄 친구, 나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친구면 족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나에겐 사회생활의 인연으로 만난 친구가 더러 있다. 그중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친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디자이너와 기획자로서의 만남으로 14년 전쯤의 일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중 문화콘텐츠 진흥원의 단일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일이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차갑고 단단해보였다. 입고 있었던 가죽 자켓 때문은 아니었다. 부드러운 말씨였지만 단호했으며 몸짓과 사용하는 언어에서 풍기는 당당함이 어쩐지 나를 주눅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모습에 눈이 부셨을 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녀와의 인연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할 때까지 한 공간에서의 만남이라곤 회의를 할 때 뿐, 각자의 공간에서 맡은 분야를 진행했기에 이름과 하는 일 외엔 알 수 없었다. 다만 먼발치에서 보더라도 그녀가 처리해내는 일들이 단순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 보이는 빛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 빛의 크기가 최대치에 올랐을 때 프로젝트는 마무리 되었고 사무적으로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이후 한동안 온라인으로 소통을 하다가 그녀는 내게 작은 공연을 선물 해 줬고 그 이후로 조금씩 그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가 어려웠다. 소극적인 나의 태도와는 달리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일까?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을까? 둘 다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녀는 아주 흔한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대학동창과 같은 이름이었고 그들의 공통점이라곤 결혼한 여성이라는 것과 아이가 있는 여성이라는 것 외엔 그 어떤 비슷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동명이인의 대학동창은 초등학생인 아이가 수학문제 하나를 틀렸다며, 학교로 쪼르르 달려가 어떤 문제인지 확인을 하는 사람이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성적표를 두고 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부형들의 남편 연봉이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다가 때론 원수가 되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영 입에 붙지 않던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동명이인의 그녀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공문을 보내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또래 아이들을 모아 ‘책읽기 모임’을 진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을 챙겨 먹이는 수고로움까지 마다하지 않고 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학원을 보내는 대신, 도서관과 박물관, 전시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다양한 문화를 즐겼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여서일까?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은 이름이라니....... 대학 동창에겐 잘도 불렀던 그 이름을 도저히 부를 수 없었다. 그 이름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 도무지 입에 붙지 않으니  남의 이름을 두고 나도 참 어지간하다. 하지만 그녀도 본인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온라인에서는 닉네임마저 자꾸만 바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 그녀가 이름을 바꿨다. 

리. 연. 

여러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지만 뜻을 제외하고 음(音)만으로도, 난 그녀에게 어울리는 ‘리연’이라는 이름이 참 좋았다. 비록 지금은 나만 부르는 이름이 되었지만,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어서 참 좋다.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자 그녀가 차츰 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별것 아닌 것도 별것으로 빛내주는 사람이다. 긴가민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하고 내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준다. 내겐 참 특별한 그녀는 내가 하는 일들을,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봐주는 법이 없다. 나의 일상을 그저 그런 일상으로 보지 않고 어디에도 없는 ‘너만의 일상’이라며 항상 귀하게 보고 지지해준다. 내 사주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그녀도 그 중 한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남편을 만나 사랑이 커지고 있을 때 경제적인 문제를 들먹이던 친구들과는 달리,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서점으로 가, 손님의 모습으로 남편을 보고 와서는 본인의 느낌을 투명하게 전해줬다. 서점에서 처음 지자체 지원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나의 불안함에 용기를 실어주며 프로그램 운영을 가능케 했다.


사는 곳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살다가 생기는 수많은 좋은 일들 중 으뜸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다. 좀 다르다. 당연히 미혼일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입에서 남편과 이미 큰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땐 속으로 많이 놀랐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모습에선 기혼의 향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지 대부분 나와 같은 반응이라고 했다. 얼마 전 그녀는 자책하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내가 결혼했고,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 내겐 모성애가 느껴지지 않나봐.”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성애가 느껴지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매우 이성적이고 자제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언어 사용과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올인(all in)하여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도 한몫을 할 것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멋짐의 끝을 보기도 하는 난, 그녀가 내 친구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좋다. 모쪼록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일에 빠져 건강을 뒷주머니에 넣어두는 일 따위는 없기를 바란다. 일을 좀 편하게 하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 둘 다 ‘이번 생은 어쩔 수 없다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고 이미 결론 내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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