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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n 03. 2020

언제나 당당했던 내 나이 VS  당당하지 못한 내 나이

     

2019년 초에 있었던 일이다. 만보 걷기를 위해 새로 설치한 휴대폰 앱에 ‘*시연님의 나이 50’이라는 문구가 떡 하니 뜬다.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낯설게 느껴져 지울까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71년생이야?” 11살이 된 아이가 묻는다. 갑자기 왜 71년생이라고 묻는 건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읽고 있던, 83년 서울 변두리 어느 소녀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열한 살 미영』 때문인지.......(설마 그사이 휘리릭 암산을 한 건가?) 나도 모르게 주저주저하다가 "엄마 80년생이야."라고 말해버렸다. “그럼 아빠랑 열한 살 차이나?” 이렇게 묻는다. 헉! 집요해졌다. “아....... 아니~ 한 살”


열두살 아이가 그린 그림. - 엄마 -

 




서른이 훌쩍 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던 동생과 난 엄마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난 너희들이 좋은 짝 만나 얼른 결혼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나이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내 나이를 스스럼없이 밝히면, “넌 어쩜 그렇게 네 나이에 당당하니?”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열심히 살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드는 것은 당연한 건데 내 나이가 어때서? 결혼이 뭐~!” 결혼 지상주의자인 엄마에겐 씨도 안 먹힐 소리였지만 난 항상 그렇게 말씀드렸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통속적으로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당히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오고 말았다.


1970년 개띠인 나는 2019년에 오십이 되었다. 오. 십.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마냥 좋기만 했던 20대를 보냈다. 20대의 끝자락엔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왠지 모를 안정감으로, 서른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맞이한 30대는 엄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잘 보냈다고 자부한다.


엄마의 기도가 닿아서인지, 나의 바람이 닿아서인지, 30대의 끝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리며 새로운 40대를 시작했다. 40대도 나이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생기다 보니, 또래 아이들의 엄마 나이와 비교가 되어 아이에게만은 10살을 빼고 알려줬다.(헷갈리면 안 되니 가장 쉬운 방법으로 10을 빼기로 한 것이다.) 오래전 읽은 故최인호 씨의 책에서 보았던 글이 충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최인호 씨는,  엄마가 학교(초등학교)에 오시는 것이 너무나 싫으셨단다. 엄마는 서른여덟에 최인호 씨를 나으셨는데 친구의 물음에 할머니라 말하기도 했다니, 시절이 다르긴 하지만 서른아홉에 결혼한 내 나이가 아이를 위해 당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만 비밀이었지 언제나 그렇듯 난 내 나이가 괜찮았다. 그런데 오십은 다르다. 더 이상 내 나이에 당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2018년 초입, 남편에게 선포를 했다. "2018년은 특별히 보내고 싶어!"  딱히 어떻게 보내겠단 계획도 없이 그저 특별히 보내고 싶단 생각만 했을 뿐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오십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은 그 어느 해 보다 바빴다. 12월 마지막 날까지 일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연말 인사고 뭐고 거침없이 새해가 밝았다. 2018년 12월 31일의 아침과 2019년 1월 1일의 아침이 다르지 않은데,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인데, 나이는 나의 아쉬움 따위는 상관도 없이 더해지고 말았다. 예의를 챙기기도 전에 말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음력으로 살기로 했다.'나만의 13월'을 보내기로 한 셈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참에 만 나이로 살까? 공공 문서에는 만 나이를 쓰기도 하지만, 해가 바뀌면 더해지는 ‘세는 나이’를 쓰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세는 나이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예로부터 널리 썼던 방법으로 햇수 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원년(元年)을 '0년'이 아닌 '1년'으로 보는 역법(曆法)의 햇수 세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950년 이후, 중국에서는 문화 대혁명 이후,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만 나이를 쓰고 있으며 북한도 현재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만 나이의 공식적, 일상적 사용을 위한 국민 청원도 있었는데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오십이라는 아직은 낯선 내 나이 때문에 만 나이로 살기로 했다.



나 이제부터 만 나이로 살 거야.
그러니 나 마흔여덟이야~



친구는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하느냐며 웃었다. 웃거나 말거나 “오십이 되려면 2년이나 남았어. 2년이나...” 이렇게 말하고 나니 삶이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마치 저축해 놓은 시간이 있는 듯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몇 살이냐는 질문에 만 나이로 얘기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그냥 우리 나이로 얘기하면 되지 무슨 만 나이냐고 반박을 하기도 했었다. 나란 사람, 참 간사하기 그지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맘이다.      


"엄마 몇 년생이야? " 오늘 아침 잠에서 깬 아이가 갑자기 묻는다. 훅! 하고 들어온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정신이 번쩍 났다.  '작년엔 그냥저냥 얼버무리며 넘어갔으나 이젠 밝힐때가 된 건가?' 온라인 수업 중에 필요한 내용인가 싶어, 일단 왜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얼버무릴 방법을 찾고 있는 내게 "아빤 70년생이래. 그럼 엄마랑 10살 차이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가 오십이라는 나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건 아직은 어린 아이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젊다는 건 아이에겐 자신감이 될 수 있으니, 아이가 있을 때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오면 "플러스 10하세요." 또는 "70년생이요" 라고 대답하며 위기를 모면했었다. 하지만 이젠 내 나이를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얘기해 줘야겠다. 아... 벌써부터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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