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비워라
결국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나오는 것이기에,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존재합니다.
'오직 내가 그렇게 알뿐'이지, 상대방은 나와 다르게 알고 경험할 수 있음을 깊이 통찰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너는 저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라고 헤아리며, 상대방의 경험과 느낌을 존중하고 귀 기울여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나라 고승 영명 연수 선사께서 『유심결』에서 이르셨듯,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으면 무명이 더욱 자라고, 이해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삿된 견해가 더욱 자란다"라는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혜암 큰스님께서는 "공부는 반조(返照)밖에 없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첫째, 누군가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의 허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물음을 던짐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나는 저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기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부족한 점과 허물을 살피는 과정입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점검하며 한 단계 더 성숙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셋째, 더 나아가 수행의 단계로, 밖으로 향했던 모든 감각들을 안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 귀, 코, 입은 늘 외부를 향하지만, 반조는 이 감각들을 안으로 되돌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입니다.
바라보여지는 여러 생각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관찰하며 '보는 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때의 '보는 자'는 심안(心眼)이지만 아직 그 실체는 아직 모르고, 이 모르는 눈이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혜거 선사께서는 참된 반조가 깊어지면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지고, 나중에는 참회할 것조차 없어지는 완전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라보여지는 것들의 근원을 관찰하다 보면, 바라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가 다르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둘 아닌 상태'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것이 견성(見性)이라 하셨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마음을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 마음이 참으로 찾기 어렵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이 만든 것, 즉 내 마음의 작용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진 '자업자득'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대방광불화엄경』의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허공처럼 비울 때,
우리는 진정으로 걸림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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