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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May 24. 2021

오래 기다려온 목소리를 만나는 일

책을 통해 만난 누군가에게 격하게 공명하기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야?"

가진 것도, 딱히 크게 되고 싶은 것도 없지만 하루하루 좀 더 나아지는 충만함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게 어떤 일이 될지 알 수 없었으며 어떤 일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자리에 가도 내 역할을 찾아내고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리라 믿었으므로.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아닌 내 모습을 연기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나은 나인 양 포장하거나 내가 아닌 나를 꾸며가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며 일하고 싶었다.


나와 타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일하고 싶다는 나의 한 가지 소망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매우 이루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사회에 나가야 할 때쯤 누군가는 우리를 "88만원 세대"라고 불렀다. 그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이 험한 세상에서 멸종해 버린 것일까? 애초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관념 같은 것일까? 기회란 이미 닫혀 버린 문을 말하는 걸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더욱이 지금은, 그런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쉽지 않았으며 오롯이 내 뜻과 능력만으로 오지도 않았으며(수많은 우연의 힘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이런 여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지금 당장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그전에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그걸 또 사람들이 좋아해 줄지 알 수 없다. 그런 불안을 지금도 안고 있다.


한때는 나만 이렇게 불안한가 싶었다. 다들 믿을 구석 하나쯤은 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왜 이렇게 힘들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힘들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어느 정도까지 아픈 걸 견뎌내야 하는 걸까?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으니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짱돌을 들라는 말 대신, 원래 청춘은 아픈 거고 견뎌내면 지나간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이 듣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그 시간들을 어찌어찌 버텨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이 책의 저자 윤이나 작가는 83년생으로 "선배 밀레니얼 세대"다. 정규직으로 일해 본 적 없이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 생활을 해 오고 있다. 이 책은 어떤 시절을 거쳐 지금에 오게 되었고 앞으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말하는 책이다. 성장기에 IMF를 겪으며 나라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무한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교육 시스템을 거쳐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전 세계적으로 고용 시장이 위축된 시기에 사회에 나가야 했던 세대. 열심히 노력하면 저 앞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말에 달려왔지만 경쟁 뒤에 또 다른 경쟁이 숨어 있음을, 결국 승리가 답이 아니라는 걸 체득해 온 세대. 그 세대가 말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작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글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기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점이 좋았다. 걸어온 시간이 힘들었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달라져야 할 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그 이야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통해서였다. 윤이나 작가의 새 책에 대한 소개였지만 나는 그 전 책이었던 이 책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함께 버티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나의 간절한 외침에 "나 여기 있다"라고 답하는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니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며 서로의 미래가 되어주자고, 힘들었던 것에서 끝나지 말고, 내가 힘들었으니 앞으로 올 사람들 역시 힘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목소리. 내가 듣고 싶었던 목소리, 함께 하고 싶은 목소리이다.


이 책은 아마 지금까지 많이 팔린 책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의 간절한 목소리는 언젠가 분명 듣고 공명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용기를 나 역시 내 목소리를 찾고 다른 이야기를 듣는데 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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