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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Feb 03. 2020

 시간을 건너 날아온 청춘의 기록

<눈뜨면 없어라> 김한길 

어떤 책은 시간을 여행하게 만든다. 과거 어느 특정 시기의 기록이 시간을 건너 나에게 다가오고 마음을 두드린다. 나는 한 겹 한 겹 시간을 접어 올라간다.


예를 들면,

2020년의 나는 지금 1년 전 읽었던 <눈뜨면 없어라>라는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내 옆엔 1년 전에 이 책을 읽고 쓴 일기가 놓여있다. 

2019년, 지인에게 결혼 선물로 이 책을 선물 받는다.

책을 다 읽은 나는 검색을 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아내와 아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음 한편에 작은 소용돌이를 느낀다.

이 책은 1993년에 출간되었다.

작가와 아내가 이미 이혼을 한 상태라는 걸 1992년에 쓰인 작가 후기를 보고 알게 된다.

이 책은 1981년에 떠밀리듯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 했던 작가와 아내의 이야기이다.


모든 걸 알아버린 나는 이 책을 다시 읽는다. 

책의 마지막에 태어난 아이는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며, 사랑하는 아내와는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 헤어질 것이며, 아이가 죽은 몇 년 후, 그녀 역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텍스트 밖, 작가의 현재의 삶 역시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채로 누군가의 청춘의 기록을 다시 읽는다. 40년 전의 이야기를. 



1981년 글쓴이는 떠밀리듯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때의 상황과 마음의 풍경이 솔직하게 이어진다. 너무 솔직해서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를 들면,


"그래, 여기는 건조한 사막이고 타향이야. 맛없는 된장도 된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먹게 되는 그런 곳이야.

처절한 외로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삶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반쯤만 옳다. 왜냐하면 너무나 지독한 외로움에 찌들어버린 사람은 삶에 대해 소리 내어 말하지 말아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건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142p.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내용은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기도 하다. 

"젠장 다시 말하지만, 내게 필요했던 건 형이 아니라 먹고살 만큼의 돈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형님이 베풀어주는 자비가 아니라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였다." 243p.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인가 싶은 내용도 있다. 

"글이 도통 진전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아무도 나만큼 힘겨워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애당초 나는 글 따위를 가까이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아무리 고쳐 써봐도 나아지지가 않는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다 보면 뚱딴지같은 이미지가 결론으로 남아버린다." 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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