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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Mar 03. 2020

소설가란 어떤 사람일까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

    책에 붙는 "베스트셀러"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말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베스트셀러란 특정 기간 동안 잘 팔린 책을 의미하니까. 그렇다고 꼭 그 책을 "나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특정 시기에 어떤 책이 많이 읽히는지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소위 트렌드를 읽고 싶다면, 지금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또 있다. 거기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독자" 즉, 책을 읽는 사람들이 특정 시점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미디어와 정보는 넘쳐나고 있고 사람들은 책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고 표출한다. 지금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알 수 있는 무한한 정보가 존재한다. 다만 방향성이 중요할 뿐이다. 예를 들어 패션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거리로 나가거나 인플루언서 sns를 보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책에 있어서 베스트셀러가 무의미한 이유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이지 지금 다른 많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베스트셀러는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독자로서의 개인에게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문학을 읽을 때 베스트셀러는 더 의미가 없다. 대개 어떤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를 기점으로 홍보 활동이 몰리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선택을 받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이 더 많겠지만.) 그 책이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이야기라거나 나의 관심사나 생각을 자극하는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독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지이다. 

    이런 생각과 별도로 타고난 반골기질 때문에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최근에 읽은 프랑스 소설 <적의 화장법>도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헌책방에 들렀을 때 제목이 낯익다는 이유로 이 책을 샀고 최근 책장을 어슬렁 거리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시점과 책을 산 시점, 그리고 실제로 읽은 시점 사이엔 긴 시간이 놓여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읽는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은 본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발상의 전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타인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여 통찰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작가의 재능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들고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면"이란 키워드 때문이었다. 최근 여러 가지 의미로 개인적인 화두가 바로 "가면"이다. 이 책의 속 날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화장법(cosmetique)'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미용이라는 의미의 장을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보편적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를 환기함과 동시에 그 다의적 차원에서 일종의 '가면(masque)' 즉 위장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적'은 누구일까? 


(여기부터는 약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결국 내면의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 내면의 악을 보여주는 방식과 표현이 극적이고 소재 역시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에게 금기는 필요 없지만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윤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 역시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고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작가인 아멜리 노통이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나 보다. 책의 뒷면에는 작가 인터뷰가 간략하게나마 추가되어 있다. 


- 자신의 생각 속에 푹 빠져 있는 사람한테 누군가 다가와서 양심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내게는 더없이 커다란 문제인 죄의식의 테마를 다짜고짜 들고 나오는 것이다. 열두 살 때부터 내 안에는 창조적임과 동시에 파괴적인 엄청난 적이 탄생했다. 그 적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디오니소스적이고 비도덕적인 무언가가 아닐까? 결국 글쓰기라는 것도 내가 보기엔 바로 그 적과의 결투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무기는 곧 나의 문체가 되는 셈이다. 그저 삶을 포기하느니 나는 이런 창조적인 대결에 나의 삶을 걸길 원하는 것이다. 아니면 잠 못 이루는 밤 동안에 자살의 욕구에 시달렸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이 쓰는가? 
- 내가 쓴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내 눈을 번쩍 뜨게 해주는 멋진 독자들이 많이 있다. 난 그들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존재를 천착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165 ~ 166p, <마리 끌레르> 인터뷰 기사 요약 재인용


    이 인터뷰를 보며 소설가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안에 어떤 문제의식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 그리고 그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찾아낸 사람이다. "이런 창조적인 대결에 나의 삶을 걸길 원한다"는 말은 타인에게는 거창해 보이지만 작가 스스로에게는 매우 절박한 문제였을 것이다. 


    요즘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철학책을 읽으면 답이 나올까 싶다.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있고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소재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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