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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Mar 11. 2020

시간과 돈의 교환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

    이 말은 여행을 떠날 시간이 주어지면 돈이 없고 돈을 버느라 바빠 여행할 시간이 없을 때와 같은 상황에 종종 쓰인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상황이 대부분 일수도 있고 돈의 여유도 있으면서 시간도 많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계급론으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돈이 있다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이 시간과 돈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동시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 좀처럼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실제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A)에 많은 시간을 쏟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B)를 할 여유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언가(A)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과 돈은 서로 끊임없이 교환되는 가치이다. 시간을 들여 돈을 벌고, 돈을 이용해 시간을 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두 가지 자원을 서로 교환하면서 살아간다.


    "워라밸"이라는 말 역시 일과 생활, 돈과 시간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움직임의 반영이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사용하여 돈을 벌지만, 그 돈을 사용해 활용할 시간이 있어야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 반대로 여유 시간에 사용할 만큼의 돈을 벌어야 그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본적인 생계는 해결이 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다시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같은 텍스트를 읽더라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처음엔  제목이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빵굽는 타자기"라니 지금 생각해도 잘 지은 제목이다. 타자기로 글을 써서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다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꿈처럼 반짝이는 지상 낙원 같은 말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낭만적인 상상을 모두 깨부수며 시작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5p


(...)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일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말이나 휴가 때. (...)
    내 문제는 그런 이중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데 있었다. (...)

-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6~7p


    이 책은 글 쓰는 일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펼쳐놓고 있다. 때로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속에 들어찬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망적이었는지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이 책의 원제는 <HAND TO MOUTH>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근근이 먹고 사는"이란 뜻이다. "근근이 먹고 산다"라고 할 때는 "live from hand to mouth"라고 쓴다. "손에서 입으로". 손으로 하는 모든 행위(시간을 들여 하는 일)가 그대로 모두 입(생계)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그려보니 더욱 서글프다.


    이 책에는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폴 오스터 스스로 고백했듯이 글쓰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 글쓰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조금 떨어져 있는 일도 있다. 번역, 서평 쓰기를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절박하게 많은 양을 했는지 고백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책을 쓰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도서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정말 눈물겨운 에피소드는 야구 게임 아이디어를 팔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장난감 박람회에 참여했던 일이다. 온갖 냉대를 받고 결국 그 아이디어는 돈이 되지 못했다. 연극으로 만들어진 희곡은 실패를 경험했으며 탐정소설의 패턴을 살짝 비튼 아이디어로 완성한 소설은 4년 뒤에 헐값에 팔아치웠다고 고백하며 끝이 난다.


    시간과 돈은 끊임없이 서로를 교환한다. 이 둘이 말 그대로 먹고 살 만큼의 수준으로 빡빡하게 돌아갈 때 우리는 지치고, 둘다를 잃는다. 폴 오스터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나는 시간도 돈도 갖고 있지 않았다.
-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146p


    내가 하는 일이 들인 시간에 비해 충분한 돈으로 교환되지 못할 때, 삶은 오직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된다. 그 투쟁 속에서 빠져나와 자기 글을 쓰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옛 시절을 잊지 않고 글로 남긴 폴 오스터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결국 시간이란 벽을 뚫고 재능이라 불리는 것을 글로 실체화 하여 돈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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