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의 Serenade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떴다. 붉은 글씨로 몇 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선배의 이름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 솔직히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생활의 테두리가 바뀌고 일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역시 바뀐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지나온 시공간에서 만난 이들과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된다. 그들과 딱히 사이가 안 좋아진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매일을 함께 마주하지 않은 이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분명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들과 평생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어쩌면 나는 마음을 나눌 사람은 몇 명 만으로도 충분하고, 그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때그때의 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간 인연들을 연락처 속에 묻어둘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락이 오랫동안 끊겼던 친구들도 나에게는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이들이다. 그들 역시 한동안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따스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그들 옆에 있어주지 못했지만 그건 곧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지지해주고 마음을 쓰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라고. 그러니 그들도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런데 부재중 전화에 뜬 이름 세 글자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은 그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힘들더라도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누가 옆에서 힘들어할 때 나는 그들을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가?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비겁하게 도망쳤던 원죄와 같은 트라우마틱한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느꼈을 때 나는 도망쳤다. 그 기억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재중 전화에 뜬 이름을 보고 그런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혹시 내가 다른 이가 내민 손을, 신호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이 든 순간 바로 통화를 눌렀다.
다행히 선배는 별 일 없었다. 실수로 잘못 걸었다고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좋다고 했다. 서로 어색하게 안부를 물었다. 아직 그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지. 나는 별일 없이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 사이에 나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전화로 그 이야기들이 잘 전달될지 알 수 없었다.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는 못난 버릇이 있다. 글을 쓸 때 망설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선배도 잘 지낸다고 했다. 회사를 옮기지 이제 3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속으로 힘들진 않은지 묻고 싶었지만 입밖에 내지 못했다. 힘들다고 한들 그 선배 역시 전화로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어딘가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만나자고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언제 한번 밥 한번 먹자."
이 말이 진짜 밥 먹자는 뜻이 아닌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네"라며 대꾸하는 내가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진짜 괜찮길 바란다.
그냥 모두 다 잘 잤으면
부디 모두 다 평온하게
- 선우정아 "Seren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