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와 의미의 차이

불안을 끌어안고 의미를 만들기

by 나날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은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선택을 회피하며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나는 이제껏 삶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빠르게 결정하려고 노력했다. 빠르게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어떤 선택을 하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가 더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의문은 "삶의 의미"였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고 공허하고 허무했다.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면 청소를 하는 행위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런 사고의 흐름이다.


청소를 한다
= 이곳에 있는 먼지들을 모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 세상에서 먼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이동시킬 뿐
-> 먼지는 어디선가 또 쌓인다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청소를 하다 보면 깨끗해진 공간이 아니라 먼지통에 담긴 먼지가 먼저 보였다. 청소하는 행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무기력을 극복해 보려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구절을 만났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의미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냥 그 자리에 있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미를 만들겠다고 "선택"해야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의미를 만든다. 내가 만들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의미를. 그전에 존재하는 건 다만 의미의 가능성뿐이다. (...)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갈 기회를 낭비하는 셈이다.


의미 창조자로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혁명적인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 혁명의 기반은 지난 200년에 걸쳐 완성된 하나의 개념, 즉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생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환경과 조건이라는 틀 안에서 취향과 핑계, 약점과 현실에 묶여 있지만 그러에도 어떤 의미를 만들고 싶은지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 나는 어떤 것이 나를 옳게 또는 행복하게 만들지 선택할 수 있고 당신도 그렇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 글쓰기의 태도, 에릭 메이젤, 2008


의미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의미 창조자'라고 선언하고 만들어나가야 비로소 의미가 존재한다.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처음에 그랬다. 내 스스로에게 다시 자문해 보았다. 나는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선택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냥 주어진다면, 누군가 내 삶의 의미를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누군가 내 삶의 의미를 정해준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자유는 곧 책임과 불안을 수반한다. 그 책임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실제로 우울에 빠진 상태에서는 그 책임과 불안이 무겁기만 하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에겐 책에서 찾은 한 구절이었다. 내가 만들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창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란 것도 참 추상적인 개념이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에 기대 본다. 글을 써서 의미를 창조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선언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끝맺으려 한다.


당신은 매 순간 자신이 가진 자원, 의도, 에너지, 단호함을 투자해 그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그다음 순간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


이것이 바로 작가에게 필요한 실존적 자세이자 실존적 행위이며 실존적 외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밖에 없다. 작가가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패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글이 중요하다고 믿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매일 글을 씀으로써 삶이라는 도박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한 하루가 지나면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 끝내주는 한 방을 날렸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보상받는다.

- 글쓰기의 태도, 에릭 메이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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