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동굴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을 때

by 나날

손톱을 대책 없이 기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손톱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손톱이 무당벌레처럼 자라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검지 손가락을 굽혀 손가락 마디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야 할 정도로 길었다.

'머리를 감을 때 불편하진 않을까?'

왜 그렇게 손톱을 길렀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쪽 얼굴을 억지로 일그러뜨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뭐, 미친 거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그렇게 넘어갔다. 스스로에게 "왜지?"라고 묻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하는 표정과 "미친 거다."라는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그분은 자기만의 동굴에 빠진 게 아니었을까?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상태, 스스로에게 왜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상태.


그냥 그렇게 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손톱이 자랄수록 일상은 조금씩 불편해지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타인이 왜냐고 묻는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그제야 자기 손톱이 길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왜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미친 거다'라고 답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그는 왜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그게 어떤 상태였는지도. 자기만의 동굴에 빠진 상태.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 의지라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말을 할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므로. 만약 왜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 혹은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이라며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스스로를 방치한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꽃에 물을 주듯이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보듬어 줘야 한다.

이걸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아니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런 작은 신호에 무감감하게 지나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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