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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담 Apr 29. 2024

마치며…

 글을 쓰면서 나중에 읽을 독자분들이 ‘공공기관은 절대 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최대한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쓰려고 했는데 현실적인 경험을 담은 내용을 적다 보니 단점이 많이 쓰여진 것 같다. 

 공공기관이 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적은 단점보다 다른 장점을 더 크게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든 저렇든 일단 합격하면 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알고 있다. 나는 그다음을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 입사 후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남아있느냐, 더 좋은 곳으로 가느냐는 당신의 선택이다. 물론 직접 바꾸는 방법도 있다.

 아무쪼록 내 글의 한 면만 보고 오해가 생겨 공공기관에 대한 뜻을 접는 일이 생기진 않길 바란다.     

 

 공무원도, 기관에 있는 직원도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분들이 정말 많다. 어쩌면 그분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다. 센스있고 열정 넘치게 일하는 사람도 좋지만 꾸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어선 안 된다. 그들은 지금 시간에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할지, 또 자신에게 배정된 예산을 잘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다. 내가 적은 단점들의 다수는 몇몇 이기적인 사람과 상황들로 인해 생긴 문제다. 항상 20%의 이기적인 사람의 욕심 때문에 결국 다수의 선량한 분들이 피해를 보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어쩌면 나도 책 서두에 적은 것처럼 공공기관의 장점에 익숙해져 당연하게 생각하고 단점이 더 크게 보인 것일 수 있다.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스펙을 가진 이 시대의 취준생 독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하시길 바란다.     

 

 취준생과 이직자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인데 마치고 보니 오히려 시니어 선배들과 경영진들이 더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LH 사건 이후 젊은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던 블라인드 어플에 시니어 세대도 많이 유입되었다. 그런데 종종 ‘블라인드에 안 좋은 글을 올리지 말라’거나 아예 금지령을 내리는 윗분들도 계신 것 같다.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표현을 강압적으로 통제했을 때 1987년 6월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당시 젊은 세대였던 시니어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의 특성상,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말이 윗선까지 닿기 전에 중간에서 누락 되는 경우가 많다. 리더에게 경청도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데 오히려 블라인드를 직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창구로 생각하면 어떨까? 물론 블라인드가 익명이라는 특성상 표현이 다소 날것 그대로가 많다. 그래도 좋은 리더로서 자체적으로 거를 것은 거르며 필터링을 하고 본다면 중간에서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의견을 듣고 개선점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더가 가장 아래에 있는 직원들의 말까지 듣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직원들의 신뢰도 얻고 자발적인 참여까지 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블라인드도 점점 건전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회사가 더 좋은 조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내 소설에 세대에 대한 내용을 다룬 부분이 있다.



MZ세대라는 단어가 몇 년 전 등장한 후 90년대생이 온다느니 직장 내 세대 차이가 극심하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언론의 힘이라는 게 확실히 무서운 게 이전에는 젊은 세대를 ‘요즘 것들’로 치부하던 어른들이 드디어 관심을 갖는다고 느꼈었다.

‘젊은이들과의 대화’, ‘MZ세대 간담회’ 등으로 이름까지 붙이고 부장, 본부장들과 원장들이 얘기를 ‘들으려고’는 했다. MZ세대로 규정된 나이에 민망하게 턱걸이를 한 나도 포함이었다. 다들 처음에는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까보니 ‘듣기는’ 했으나 피드백은 없었고, 오히려 우리의 생각을 고치려는 대답만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대화가 아닌 교화의 시간이었다.

들어야 할 청자 세대가 화자 세대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갖춰진 그런 행사들은 점점 참여율이 떨어진 형식적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 하기보다는 현상을 직원들에게 찾았다. 회사에 관심이 없다는 둥, 너무 개인적이라는 둥.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견을 털어놨던 직원들의 이름이 어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오르내리기까지 하자 젊은이들이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그렇게 세대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었다. (중략)     


                                                                                소설 『신의 직장. 신이 떠나다.』12화 내용 중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이다. 지금 2~30대 회사원 중 이런 경험을 겪어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종종 본인은 직원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경청하셨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소설에 쓴 것처럼 젊은이들의 생각을 고치려는 교화의 시간은 아니었는지 되새겨보셨으면 좋겠다. 분명 당신도 1987년에 화염병도 던지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시기가 있었을 텐데… 그런 분들이 어른이 된 후 왜 80년대의 어른들처럼 되셨는지 모를 일이다. 리더가 ‘아래를 바라보되 위를 지향한다면’ 존경과 명예는 절로 따라온다.

 나는 공공기관에 오는 임기제 경영진들이 권력과 자리 유지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로 무언가를 남기고 은퇴하시길 바란다. 경영진이 바뀔 때 돌이켜보면 저분이 임기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분들이 꽤 많다. 2~3년의 세월을 직원이나 경영진이나 낭비한 셈이 아닌가. 꼭 수십, 수백억짜리 사업을 따오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불편함을 없애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발판만 잘 마련해줘도 충분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경영진 본인들이 찾아야 한다. 먼저 다가가고 들어주고 받아들이고 행동한다면 무얼 해야 할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연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뀌고 남긴 것들이 결국 본인 자녀와 손주들에게까지 돌아가는 혜택임을 아셨으면 한다.          



신의 직장은 사람이 만든다.


 필자는 딱히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성당의 경건한 분위기와 입이 떡 벌어지는 서양 건축 보는 것을 좋아해서 유럽에 갔을 때 가는 도시마다 성당은 꼭 들렸다. 또 절의 고요한 아늑함이 좋아서 등산하다가 절을 마주치면 여유롭게 둘러보며 쉬고 절을 하기도 한다. 유교 집안이라 매년 성묘나 벌초를 가면 조상님들께 책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즉, 내 멋대로 종교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분들이 보면 사람 참 이기적이라 하실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내가 종교나 신을 대하는 태도는 포용적이다.

 경전이든 신화 또는 민간 설화든 신이 신(神)이라는 지위를 얻고 초월적인 존재로 격상되게 만든 건 사람이다. 수천 년 전의 인간들은 연약했다. 생존 자체가 불안했기에 기대고 싶은 존재를 만들어 안정을 빌게 됐을 것이다. 토속 신앙의 시작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부족이 생기고 나라를 세우는 단계에서 백성들을 단합하는데 종교만 한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통치자의 권력도 보장되었다.

 어쩌면 철학이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빌어 종교로 탄생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데는 도덕과 윤리 같은 기본적인 질서가 필요하다. 내가 아는 종교에는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구절이 없는 경전이 없다. 이런 기초적인 철학을 확산시키기 위해 신과 종교를 이용한 것이 아닐지 하는 의견이다.

 어쨌거나 사람은 절박한 상태에 놓이거나 간절한 무언가를 바랄 때 신을 찾는다. 신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로서 인간들에게 기댈 곳이 되어 주었고 그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손으로 정립되었다.

 불안정한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 시대를 지나며 공공기관은 자연스럽게 ‘신의 직장’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그 최고의 가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인간은 한평생 불안정한 존재다.

 세대가 교차하며 많은 갈등이 나타나는 지금의 시대에 신의 직장이라는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법과 규정이라는 장치로 ‘안정’을 보장받은 곳이라서 신의 직장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찾는 곳이 신의 직장이 되길. 신이 신(神)이 되게 한 것이 사람이듯 사람들의 손으로 좋은 직장을 만들어 가길. 그런 곳이 자연히 신의 직장이 되길 바란다.


 더 좋은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끝.




『공공기관 가고 싶은 취준생들은 읽으면 안 되는 책』은 작년 12월부터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다. 처음에는 소소한 내용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 속에 소설이라는 장르의 한계로 인해 모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쓰게 됐다. 그 글들이 모이고 가다듬는 과정을 거쳐 4개월 만에 끝맺음을 맺는다.


구성 중 좋은 기관을 고르는 꿀팀과 어떤 유형을 노릴 지에 대한 노하우 등은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연재 글에는 올리지 않는다. 이 글이 추후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내가 지은 제목은 아직 가제이다. 사실 이 책이 에세이인지 실용서인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권으로 책으로 나와 서점 진열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제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윤담이라는 이름과 공공기관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면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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