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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담 Apr 19. 2024

화성에서 온 경영진

임기제의 단

 많은 공공기관의 CEO(기관장), 임원, 부서장 등의 경영진은 선출직 또는 임명직 인사로 구성된다. 드물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정치적 목적 등의 이유로 임명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임명되는 건 아니다. 관련 분야의 10~20년 이상의 경력이나 박사 이상의 학위, 교수, 기업인 등의 경력을 요구한다. 대부분 2~3년 정도의 기간이 정해져 있는 임기제이다. 예를 들어 기관장 임기가 도래하면 이사회, 심사위원회 등의 기구가 구성되고 초빙 공고를 게시한다. 이후 기관장에 지원한 인사들을 추린 후 2~3명 정도의 후보를 정하고 면접 등의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기재부 등의 소관 부처 장관(지방 기관은 지자체장)이 승인하고 임명하는 식으로 절차가 이루어진다.

 전관예우가 많이 없어졌다지만 공직자 윤리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공직자의 퇴직 후 3년간 재취업 금지’ 대상에 공공기관이 추가된 건 2014년이다. 고위 공무원으로 은퇴 후 3년 후에는 관련 분야 CEO로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의 CEO 자리는 소관부처의 차관, 실‧국장급 출신 인물이 많다. 부서장급 인사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급이나 대기업 부장급, 타 기관 경력자, 가끔 교수들이 지원한다. 내부 직원 출신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긴 한데 드문 편이다. 즉, 경영진 대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기관의 블라인드 리뷰에서 ‘경영진이 문제’라는 글이 항상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은 그 인맥과 경험을 활용해서 신규 사업과 예산을 잘 따오라고 초빙한다. 그런데 가끔 관련 없는 사람이 오는 경우가 있다. 소관 부처에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 기업인, 대학 교수 출신이 CEO로 오면 공공기관 정서에 적응하는 데만 1년은 걸린다(극히 드문 경우지만 아예 없진 않다).

 메이저 기관은 부처에서도 아무나 기관장을 시키진 않으니 유능했거나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 외 평범한(?) 대다수 기관은 소관 부처 출신이더라도 무능한 사람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낙하산이다. 리더십, 정치력, 중앙 인맥, 경영관리 능력, 관련 경험과 지식 등 리더의 수많은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그냥 감투 욕심으로 CEO로 오면 직원들이 힘들다. 이 상황에서는 엄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사람 보는 눈 없는 기관장만 잘 꼬드기면 자기 세력을 요직에 앉히고 회사를 장악한다. 기관장은 휘둘려질 뿐.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잡는 사람들을 보면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CEO일수록 자기 말 잘 듣고 아부하는 사람을 총애하는 걸 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걸 느낀다. 차라리 욕심 없이 허허 웃기만 해도 흔들리지 않는 기관장이 낫다.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지방 공공기관으로 갈수록 걸맞지 않은 사람이 CEO나 부서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


(평점 2.8점을 받은 기타공공기관의 블라인드 리뷰)


 보통 직원들은 원장이 누가 되든 크게 신경 안 쓴다. 어차피 고위 공무원 출신이 올 것이고 3년 있다가 갈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혁신보다 안정을 원하는 그들 생태를 알기에 변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일을 빡세게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더 관심이 많다.

 선거캠프나 보좌관 출신 등 정치적인 인사가 올 경우도 꽤 신경이 쓰인다. 기관 성격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냥 윗분이 가라고 하니까 온 케이스다. 관련 경험도 없어서 이상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땐 등골이 서늘하다(기업지원 기관인데 비행기를 만들라거나, 소상공인 지원 기관이 따로 있는데도 치킨집을 지원하라거나… 참고로 실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사업은 엎어버린다. CEO 말만 믿고 중점적으로 추진했는데 예산이 대폭 깎이거나 사업이 없어지면 그런 낭패가 없다. 바뀐 정권에서 그 CEO도 남은 임기를 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대로 정말 훌륭한 CEO인데도 정권이 바뀌면 내쳐질 수 있다.

 일반 직원들이 이직을 위한 과정으로 몇 년 경력을 쌓다 가는 것처럼 CEO도 다음 단계를 위해 오는 인사도 있다. 정계 진출을 하려거나 메이저 기관장으로 가기 위한 경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단기적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한다. 5년, 10년 이상 공을 들여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은 신경 쓰지 않고 본인 임기 내 돋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들들 볶는다. 기관 발전에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동안 회사는 뒤처진다.

 몇몇 유형별 기관장들 출신을 조사해 봤는데 대체로 연구개발목적기관 정출연들은 내부에서 착실히 단계를 밟아 기관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능력 없이 정치질로만 올라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관장이 될 만한 실력과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정출연은 전문 분야가 확실하고 다른 기관들과 경쟁할 일이 많지 않다. 전문성이 중시되는 과학기술계 특성상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낙하산이나 경영진 문제로 기관이 피해 볼 일이 적다. 부처 출신 기관장을 앉히고 어떻게든 인맥으로라도 예산을 따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다른 기관보다는 나은 편이다.     

 경영진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는 취지 자체는 좋다. 장점만 생각하면 외부 인사가 와서 새로운 변화를 주고 내부에서 미처 모르던 세련된 문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누구 1인이 독재적으로 운영할 일도 방지할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 와서 묵은 사람과 제도는 버리고 기관 전체가 발전하는 것도 목격했다(딱 한 분 봤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장기 집권은 방지했지만 임기 동안은 충분히 독재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뿐더러 자기 회사가 아니니 책임감이 덜한 사람도 있다.

 공공기관은 공적인 사업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허나 앞서 설명한 사례들처럼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이 경영진으로 오게 되면 오히려 그 가치를 잃는 게 아닐까. 면접 과정에서의 연기력을 검증하지 못한다면 연임 과정에서라도 직원들의 평가 점수가 반영되어 최소한 장기 집권은 방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책임과 권한에 대한 고찰


 리더는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수많은 ‘권한’에는 ‘책임’이라는 친구가 항상 따라다닌다.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권한만 챙기고 책임은 아래로 내리는 분들이 있다.     


“이거 네가 한 거잖아.”     


 그런 분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리더가 시켜서 한 일인데 책임까지 실무자에게 전가하려 한다. 분명 결재란에 자기 이름이 박혀 있는데도 실무자가 잘못한 일이 되어 버린다. ‘내가 언제 그랬냐.’, ‘네가 하자고 한 거다.’ 등등 빠져나갈 핑계도 참 많다.     


“그냥 결재하면 되지?”      


 라는 말이 어쩌면 그들의 책임을 미루는 시작점일 수 있다. 권한과 감투만 누리고 책임은 아래로 무한정 내리는 행위는 임기제 경영진의 단점 중 하나다. 공공기관의 경영진이라는 명함은 이곳저곳에서 좋은 대우에 때론 의전도 받는다. 임기 내에 사고가 나면 연임이 어려울 수 있는데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들의 임기 동안에는 도전이나 혁신은 없고 자리 유지에만 관심이 많다.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만 팀장에 앉히고 쓴소리하는 직원은 이미 한직에 가 있다. 밖에 나가면 직원의 공을 마치 자기의 성과처럼 포장하는 건 덤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 시간에 그들은 결정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기 의견은 없이 듣기만 하고 시간을 낭비하다가 ‘조금 더 고민해 보자.’는 말로 다음으로 미룬다. 아, 아니다. 의견은 있다.      


“규정에 있나?”

“그건 윗분의 뜻과 맞지 않는다.”
 

 그들은 기다린다. 일을 질질 끌어도 급하지 않다.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의견이 나올 때까지 며칠이고 기다린다. 주요 실무자 몇몇만 있으면 되는데 굳이 부서원들을 다 불러다 회의한다. 회의는 자꾸 산으로 가는데, 보다 못한 누군가 나서서 ‘이렇게 하시죠’ 하면 그게 결정이 된다. 나중에 일이 잘되면 자신의 공이고, 잘못되면 책임은 나선 이의 몫이다. 말로는 부하의 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지만 사람들은 그의 결정 장애를 안다. 결정 장애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리더의 결정 장애는 자질 부족이다.     

 공공기관에서 참 많이도 겪고 들었던 이야기다. 다른 회사도 이런 일이 많은지 궁금하다.      

 

 8년 동안 5명의 기관장을 보았다. 그중 고위 공무원에 대기업 경력 등 화려한 이력만큼 회사를 많이 바꾼 분이 있었다. 기관장이 바뀐 초기에는 잘 보이려는 파리가 먼저 꼬인다. 그런데 탁월한 사람 보는 눈으로 귀신같이 그들을 골라내고 직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셨다. 그럼에도 겸손하게 자신은 ‘3년짜리 계약직’이라며 항상 스스로를 낮추었던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기 자랑하기 바빴던 다른 4명은 임기 끝나고 놀고 있는데 그분은 찾는 곳이 많아 아직도 필드에서 뛰신다. 처음이자 마지막 진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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