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수습 기간은 1년 같은 3개월입니다.
드디어 수습 딱지를 떼었다.
딱지를 떼었다는 결과물 자체는 기념할 만한 일임이 분명했으나,
떨어진 딱지는 단단하지 못했고, 채 아물지 못한 상처는 결국 흉터로 남았다.
나의 수습 기간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해석은 이미 2주 전에 결정되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점은
기쁘게 경단녀가 되었다고 호기롭게 글을 시작했지만, 마치 그다음 글은 다시 경단녀가 되었다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수습기간에는 단순하게 완전한 ‘몰입’을 해야만 했다.
오로지 그다음 글은 이러한 글이길 바라는 마음 하나를 품고 말이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같이 품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맑았다 개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주변의 모든 상황과 말들을 곱씹고 되뇌었다.
당연히 수면의 질은 나빠졌고, 스트레스로 인한 알레르기의 재방문이 잦아졌다.
그렇게 수습 종료의 2주 전은 마치 아침이 오기 전의 새벽처럼 가장 어두웠다.
지나 보니 그게 동트기 전의 새벽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당시 나의 인생과 마음은 끝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나는 우아함 따위는 집어치우고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나의 너덜거리는 밑바닥을 찍었을 때 수습기간의 종료라는 수확을 얻었다.
분명한 건 20대 때의 수습과 40대의 수습은 확실히 달랐다.
20대의 수습은 순수했고 미흡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40대의 수습은 두려웠고, 여전히 미흡했으며, 오지게 아팠다.
………….”중고 수습생입니다 “
이것이 나의 좌표이다.
경력 수습생이라는 주변의 시선 속에서 나는 360도 눈치를 보는 저세계 스킬을 얻어버렸다.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
오감이 모두 개방된 상태로 회사에 있다 보니
집으로 오면 모든 자율 신경계가 강제로 폐쇄되었다.
그저 도피하고 잠을 잤다.
퇴근하면 스스로에 밀려드는 실망감을 되뇌지 않기 위해 생각을 강제로 차단하고 도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일으켜 세울 의지마저 소멸될 듯했다.
하지만, 결국 위기가 왔을 때 나는 폭발을 했고, 수습 딱지를 뗄 수 없을 거라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온갖 스트레스성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무조건
버. 텼. 다.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은 버렸다.
그냥 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왜냐하면 수습생이 할 수 있는 권한 밖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신을 의존해야만 했다.
(그 당시의 일은 회사 기말상 이쯤으로 기록해야만 한다.)
나는 풍전등화 같은 위치에 놓였고,
마치 바퀴벌레가 되자는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2주가 흘렀다.
지구상의 가장 질긴 생명력...
바퀴벌레는 절대 죽지 않는다.!!
그렇게 바퀴벌레는 정규직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