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에게 보내는 금주일지 - 1일차

부끄럽지는 않은 알콜중독자입니다만

by 초과 근무

나는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다.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다.


그중 나는 ‘술을 즐기는 자‘라는 증명 하나를 늘 유지해 오고 있었다.


매일 마시지는 않지만, 분위기에 따라 자리에 따라 등등의 이유로 알콜을 거부하지 않았다.


술을 먹고 책임지지 못하는 행동을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전제 조건만 지켜진다면 나는 즐기는 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아찔했던 순간들은 늘 있었다.


그것이 행동이든 말이든 다음날 후회를 부르는 요소들이 있었다.

잠시의 반성이 있었으며,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했다.

(과연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나의 뇌에게 속은 것은 아닐까?)


같은 실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음’, ‘폭음’은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숙취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 또는 분위기 좀 아는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 알콜은 하나의 명함쯤이 되어 버렸다.


연애, 결혼이라는 행사에서 알콜도 하나의 식구처럼 따라붙었다.

알콜이 없었다면, 나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을 거라는 자화자찬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가 힘들어서 알콜을 찾았다.

남편과 합이 맞지 않을 때도 알콜을 빌려 해결했다.


심지어 아이 앞에서도 알콜을 즐기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컵을 들었을 때부터 ‘짠’이 난무하는 가족식사자리였으리라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물 잔을 들고 그렇게 ‘짠’을 외친다는 선생님의 말이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술은 커피 같은 문화라고 생각했다.

미슐랭의 한 분야쯤으로 생각하고 음미하고 기록하기를 즐겼다.


문제는 술이 술을 부르는 습관이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부끄러운 행동이나 언행이 불쑥 찾아오기를 서슴치 않아졌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는 부끄럽지 않았지만, 스스로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몹시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그것들을 여과 없이 지켜보는 아이에게 점점 부끄러워졌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은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것만, 여전히 힘든 순간들은 나를 괴롭혔고

술로 잊고 술로 풀고 술로 위로했다.


문득 아이도 힘들 때마다 술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자라는 배양토 같은 부모에게서 유전자처럼 무섭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무서워졌다.


적어도 나의 술잔에 부딪히는 아이의 탄산음료도 습관처럼 배어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알콜중독이라면 아이는 탄산중독이다.

내가 선물한 아이의 현 중독인 것이다.


매일 술을 마시지도 않고, 절제도 하지만, 종종 술 때문에 부끄러웠다면

알콜중독자가 맞다.


폭우처럼 내리는 비는 피하는 게 맞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나에게 “금주를 선언합니다.”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아이의 첫 알콜 역사에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른 버킷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히 지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손을 떨면서 역사를 기록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를 보니 매일 술을 마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속도라면 아이의 첫 술잔은 손을 덜덜 떨면서 부딪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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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1일차]

보통 소고기를 먹을 때 늘 와인을 곁들이곤 하는데

금주를 선언하고 와인 없는 소고기를 처음 먹었습니다.


결론

1. 소고기가 맛이 없었습니다.(그렇다고 조금 먹지는 않았습니다.)

2. 식사자리가 빨리 종료되었습니다.(술 수다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아이와 저녁 식사 후,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4. 맑은 정신으로 금주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점) 술 수다가 아쉽습니다. 술을 입에 안대니 말 수가 줄었습니다.

새삼 알콜의존 대화를 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나는 심한 알콜중독일지도 모릅니다.


장점) 그래도 금주를 하니, 실보다는 득이 많은 듯합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술을 찾지 않고 생각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그날이 곧 오겠죠. 어쩌면 당장 내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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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내일은 월요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