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아이에게 번아웃이 놀러 왔습니다
여느 날과 같았다.
나는 퇴근 후에 부랴부랴 집으로 왔고,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하원하는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었다.
인스턴트 반조리 식품과 반찬가게의 소중한 도움을 받아 완성된
죄책감 한 스푼의 따뜻한 식사였다.
아이는 그 밥상 앞에서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나... 학원 가기 싫어.”
나의 스위치는 여기서 바로 로딩 없이 켜져 버렸다.
“학원 가고 싶어서 가는 애들이 어디 있어? 안 다니면, 너 혼자 공부를 어떻게 해?”
“혼자 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퍽이나 혼자 하겠다!? 조용히 하고 밥 먹어.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나는 그렇게 아이와의 대화를 종결했다.
아이는 늘 학원 가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보상받을 때마다 학원을 다녀서 그렇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나의 이론으로 아이에게 본의 아니게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나의 생각을 주입하려 했던 의도는 분명했다.)
우수한 성적의 결과물들이 쌓여서 너의 미래에 좋은 길이 되어 줄 거라는 말을 형태만 바꿔가면서 말이다.
때로는 스토리텔링하듯이
때로는 협박하듯이
.
.
.
나는 그렇게 부모라는 말그릇 안에서 아이를 헤엄치게 했다.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 살피지 못한 게 아니라 회피했다.
무수히 많은 날들을 나는 꼿꼿하게 그리해 왔다.
아이는 다음날 아침 등교 하기 전에도 칭얼거렸다.
어제의 대화가 부족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나의 시계바퀴 안에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내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던지.. 아니면
아이의 등을 강제로 떠밀던지..
나는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
.
대책이 없었다.
일하는 동안 하교 후에 엄마 없이 방치되는 아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그건 나의 불안이 방치되는 것과 동일했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보호자 아래 아이가 무사할 수 있다는 안전에 대한 불안이었을까?
아이가 안전하기까지 하면서 학교 공부도 보충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가끔씩 운이 좋으면 학업에 대한 자존감이 올라갈 정도의 결과물도 보너스처럼 챙길 수 있었다.
일을 하다가 고비가 올 때면 아이 학원비를 보태야 한다는 사실에 이를 악 물었던 적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나라고 아이 공부를 직접 가르쳐 본 적이 왜 없겠는가?
나는 심지어 학생들을 교육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만큼은 가르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가르쳐봤지만,
아이가 이미 선생님(=엄마)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아로 변질되었으며,
그런 날은 결국 교육이 끝난 가정환경에서 2차 폭격이 발생했다.
공사가 구분되기가 쉽지 않았다.
나와 아이 모두에게 교육의 사각지대가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남편과 같이 일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했으면서
(남편과 나는 성향이 매우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동업은 할 수 없다)
아이와 같이 할 수 없다는 인정은 쉽지가 않았다.
(이것을 모성애라고 불려야 한다면, 나는 부족한 쪽이 맞겠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잘 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혼자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나도 아이의 성장에 맞춰 생각의 틀을 깨야 했는데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은 가장 두려워했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아니면 직업적으로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불편한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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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 투정에 대한 감정이 발설되지 않았을 때쯤
나는 한순간의 징징 거림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조용히 물었다.
“요즘도 학원 가기 싫어?”(분명 부드럽게 질문했으리라)
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요즘에는 좋아.” 혹은 “이제는 괜찮아.”
하지만, 아이는 내가 정해 놓은 답을 내주지 않았다.
“응, 정말 가기 싫어. “
아이의 대답에 나는 주제를 돌렸다.
난 그때까지도 '이번 폭풍은 좀 오래 머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스위치가 한번 눌러진 탓에 아이는 또다시 며칠을 보채었다.
결국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는 것이었다. 숙제도 빈번하게 빼먹는다는 것이었다.
주말 내내 잔소리가 이어졌다. 남편도 덩달아 아이를 다그쳤다.
학원을 안 다녔으면 안 다녔지, 불성실한 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는 우울한 주말을 보냈고, 조금 더 처진 어깨를 장착한 날들이 이어졌다.
또 시간은 흘렀다.
학원에 요즘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니 좋아졌다고 말해주었다.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가 요새 힘든 시기가 온 듯하니,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학원에서 아이의 태도를 지적했을 때 그렇지 않았던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았을까? 뒤늦게 자책이 든다.
나는 아이를 그렇게 교육한 적이 없는데 잘못 키워 보냈다는 말로 전환해서 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공격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그 화를 아이에게 돌려차기 한 것인가....
그렇게 한 달이 넘어가고 아이의 한없이 처진 어깨를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른 주제(영화나 다양한 체험활동)만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철저하게 아이를 두고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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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의 브레이크는 박살이 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