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침과 득도의 향연
결혼이란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한다면 주변에 있는 유부남/녀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거짓말이 아님을 즉시 알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그렇게 다른데 어떻게 계속 함께 살지? 그러게 나도 신기하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인생의 모습이 다르듯 부부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걸 극복해 나가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고 합의했고 또 같은 이유로 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니지만 그때는 큰 문제로 느껴졌고 왠지 양보를 하면 지는 것(?) 같기도 해서 쉽게 양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양보를 하더라도 결국 쌓이고 쌓여 폭발하게 되는 순간도 필연 히 오게 된다.
그럼 우리는 뭘로 싸웠을까? 남부끄러워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빨래"부터가 문제였다. 오랜 자취생활을 해왔고 옷에 예민하지 않은 나는 세탁기에 한 번에 다 넣고 빠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속옷, 수건, 겉옷을 구분해서 섞이지 않게 자주 빨아야 된다고 했다. 그래야 더 위생적이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뭔가 그럴싸하고 맞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귀찮았고, 세제가 배로 쓰는 사치를 부리지만 나는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위생과 편리(?)의 싸움은 지속 반복되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걸쳐 속옥/수건과 겉옷이라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다. (사실 지금도 아내 몰래 다 같이 빠는 경우도 있다.)
돌이켜보면 이걸로 왜 그렇게 싸웠을까 싶다. 서로 설득력 있는 주장이 난무했지만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압도적 논리나 이유도 없었다. 그냥 익숙한 내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은 마음 아니었을까?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다가는 양재동 가정법원까지 가게 되는 법!
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반발 물러서고 치열하게 싸우고 서로 니탓을 하며 자기가 더 양보를 많이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우리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최근에 일이다. 우리는 아내의 권유로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핫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런 핫한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남들이 잘 가지 않을 것 같지만, 나만의 재미가 있는 조용한 소도시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안 가본 곳에 가보고 우연히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그 사람들의 인생을 여행이라는 핑계로 잠시 구경하는 것이 재밌다.
그래서 아내가 그런 이유로 이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핫한곳? 사람 많은 곳? 정말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재동 가정법원을 떠올리며 알겠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의 묵호항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내의 이번 여행 목표는 핫한 장소에 가보는 것, 핫한 맛집에서 먹방을 하는 것이었다. 가령 남들 다 먹는다는 묵호김밥을 먹어야 하고, 핫한 어떤 독립서점에서 책을 보고, 유명하다는 소품샾에 들러 구경을 하는 것이다.
우연히 지나가다 만난 소품샵에 들러 물건을 하나 살 수도 있다. 때마침 식사시간이 되어 사람이 많이 줄을 선 곳에 우리도 줄을 서 밥을 먹을 수도 있다.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계획에 맞춰 그곳을 가는 것은 나와는 영 맞지 않는다. 여행은 일상을 떠난 우연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함께 살며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없기에(절대로 양재동 가정법원 때문은 아니다.) 하나씩 내 의견을 내려놓고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알 수는 없다.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의견을 받아들여 줄을 서본 인스타 맛집 중 가끔은 눈이 '띠용' 하게 만드는 맛집도 있었고, 줄을 기다리며 나눈 이야기가 추억이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줄을 서준 날이면 그날 저녁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한적한 술집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 한잔을 무한번 나눠마시며, 자리를 지켜 주기도 한다. 그러다 1시간만 지나면 '나 졸려! 이제 가자!'라며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소리를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위에 다들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나와 다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려 하는 저 존재를 애써 참고 나를 조금 내려놓고 맞춰나가려 노력하는 건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라서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일방이 아닌 양방이 노력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기가 더 양보한다고 굳게 믿고, 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양보를 하며 이해하며 살아가나?라는 자뻑을 하며 빡침과 득도의 향연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