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챌린지 - 28일차
올해 말 결혼을 준비하면서 작년 12월부터 신혼집에거 같이 살고 있으니 벌써 같이 산 지 6개월이 되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각자 40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살아왔으니까.
그 긴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온 사람 둘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사실 어마어마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혼 초엔 정말 사소한 걸로 많이 다툰다고 했다.
치약을 중간에서 짜냐 끝에서 짜냐, 샴푸 뚜껑을 왜 안 닫냐, 슬리퍼는 왜 거꾸로 벗어놓냐...
정말 시시콜콜한 것들. 듣다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피곤하고 지치는 일들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살짝 걱정이 들었다.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우리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같이산지 6개월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왜 그걸 그렇게 해?' 같은 말이 오간 적이 없다.
'이건 네가 해야지'라는 말을 하지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명이 청소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빨래를하고, 한쪽에서 요리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릇을 꺼내고 반찬을 데운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손이 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다.
요즘 집안일도 업무 분장을 해서 한다던데 우리도 나눠야하지 않을까? 나눈다면 나는 어떤걸 하는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업무 분장이라는게 필요없을 정도로 그때 그때 해야할 일들을 알아서 잘 한다.
물론 작은 차이는 있다.
나는 화장실 청소를 잘 안 한다. 몰아서 한번에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남편은 샤워하면서 바닥을 닦고, 구석구석 물기를 훑고 나오는 게 습관이다. 반면 남편은 쓰레기통을 잘 안 비운다. 꽉 차이었어도 그냥 꾸역꾸역 눌러서 뚜껑을 담는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가지고 불만을 품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하면 된다.
나는 단지 내가 더 잘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고, 남편도 마찬가지다.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 날이다. 남편은 “양도 많고 무거우니까 그냥 놔둬. 저녁에 같이 하자.”라고 하지만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남편이 출근하면 그냥 내가 오전에 처리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가 이걸 들고 나가려면 얼마나 귀찮고 피곤할지 알 것 같아서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괜히 나 자신이 뿌듯하고, 남편도 고마워한다.
서로가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배려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사랑이 깊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성숙해졌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계산하는게 결코 현명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 같았으면 “왜 그걸 안 해?”라는 말이 먼저 나왔겠지만,
지금은 “내가 하면 되지 뭐~”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저 사람도 나를 위해 대신 하는 일이 많다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 살 땐 집안일도 내 맘대로, 시간도 내 맘대로였지만 요즘은 상대를 생각하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린, 늦게 만났기에 더 현명하게 사랑하는 법을 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상이 감사하고,
이 평화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