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의 로망은 개나 줘버렸다

100일 글쓰기 챌린지 - 36일차

by 혜봄

30대때는 누구보다 결혼,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컸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결혼, 반짝이는 웨딩드레스, 고급 호텔 예식장,
하객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서 있는 나.
그리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꿈같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나.

가뜩이나 이벤트, 기념일 챙기는걸 좋아하는 나에게 결혼은 인생 최대 이벤트인 것만 같았다.

그런 순간을 상상하는 걸 정말 좋아했다. 언젠가는 꼭 이뤄질꺼라고 믿으며


그런데 마흔이 넘고, 마흔 다섯을 지나면서
그 꿈들이 하나둘씩 흐릿해졌다.
결혼에 대한 기대도,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도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번생애 나에게 결혼은 없나보구나.


그랬는데 생각지못하게 마흔일곱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것도 퇴사한지 1년이 넘어 통장 잔고는 텅 비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인생에서 가장 가난한 시기에.


다행인건 이미 화려한 결혼식에 대한 열망도,

SNS 속 완벽한 신혼여행에 대한 욕심도

내 안에서 많이 사그라져 있었던 것.

그렇게 나는 지극히 평범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30대의 나라면 '한번뿐인 결혼식인데,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초라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먼저 바뀌었기 때문일까.


신혼여행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하기는 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하와이?”
“하와이가 무리라면 포트투갈?”
검색창에 ‘하와이 신혼여행 후기’, ‘포르투갈 물가’를 몇 번이나 검색했다.
하지만 환율, 물가, 항공료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하와이는 1,500만 원, 유럽은 1,0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예상되었다.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았다. ‘굳이… ?’

그래서 우리는 그냥 신혼여행도 소박하게 동남아 휴양지로 가기로 했다.
햇살 좋은 곳에서 망고 주스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쉬다 오면 좋겠다는 마음.

요란한 계획은 없지만,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결혼에 대한 나의 로망이 변했다.
현실과 부딪치며 조금씩 성숙해졌고 그러면서 더 단단해졌다.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꿈꿨지만
지금은 ‘이 사람과 함께하는 인생’ 자체가 내게는 가장 근사한 이벤트가 되었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내 평생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랑과 결혼을 하게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로망이었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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