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에 무작정 퇴사를 하면서도 내가 경단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걸 왜 몰랐을까.
알았더라도 그 결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회사에 얽메여있는 시간이 얼마인데, 시간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고 늘 호기롭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름의 시도를 해본 것들에 대해서 성과는 보이지 않았고 또 다른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던 통장 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취직을 하려했으나 이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이직을 여러차례 했었고, 그때마다 수월했기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를 위한 자리는 더이상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경단녀', 내가 바로 그 경단녀가 된 것이었다.
낭떠러지에 서있는 느낌, 막막하고 두려웠다.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야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 무기력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마치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정신과에서 실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는 것 말고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때 글쓰기를 권유받았다.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서 수업을 들었는데 마침 공저 프로젝트가 있었서 참여했다. 2달반동안 작업한 끝에 공저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생산하지 않는 인간, 아웃풋 없는 인간이 뭐라도 만들어 내고 싶어서 쥐어짜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려니 공통의 주제에 맞는 글을 쓰되 뭔가 메시지를 담아야하고 정제된 내용이어야한다는 강박이 심했고 사실 그랬다. 내 일기장이 아니니깐. 억지로 포장하고 미화하여 글을 쓰기도 했다. 작은 성취를 목표로 했으니 목표를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책을 볼때마다 흡족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마음 한켠에 찝찝함이 밀려왔다.
솔직한 글, 글쓰는 행위자체가 나를 치유할 수 있을때까지 매일매일 써보자. 이번에 작심삼일하면 정말 인간도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 100일 챌린지. 오랫만에 브런치에 들어와보니 34일차까지의 글이 남아있다. 또 실패네.
어떤 새로운 습관을 만드려면 66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퇴사 후 뭐 하나 딱히 이룬 성과도 없다. 그저 스스로한 100일 글쓰기 챌린지라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너무 한심하지만 그래도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도 도닥여주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쌍해서.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