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조각들 #1
나의 이야기 시작
매미의 울음소리가 유난히도 거셌다. 그 여름, 공기는 무겁게 우리 안으로 스며들었다. 더불어 밀려든 햇살은 무겁게 우리를 찔러댔다. 낡은 장판은 그 열기에 달궈져 발에 닿을 때마다 바삭 부서질 것만 같았다. 걸음걸음 퀴퀴한 세월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묵은 먼지가 덩달아 빛 속을 부유하며 시간의 두께를 더했다. 뚝뚝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그 땀이 이마를 넘어 볼을 타고 흐르는 순간, 어느새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함께 섞여 내리고 있었다.
삼우제를 이제 막 마친 집은 더위와 함께 자리 잡은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고 집안에 묵직하게 머물러 있었다.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살던 아버지였다. 그때 몇 톤 트럭에 실을 정도로 많은 짐을 정리한 터라 그의 짐은 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84년 세월을 살았던 아버지의 흔적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저마다 구역을 맡아 보물 찾기를 하듯 바삐 움직였다.
큰오빠가 한 가방을 들어 올렸다. 먼지가 한가득 흩어 뿌려지자 형제 모두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큰오빠는 나를 보며 물었다.
“이거 비밀번호 알아?”
고개를 저었다. 모두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했는지 누구랄 것도 없이 비밀번호 찾기에 나섰다.
여러 시도 끝에, 낡은 수첩 밑에 적힌 희미한 네 자리 숫자를 발견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가방의 다이얼을 하나씩 돌렸다. 딸깍딸깍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방을 때렸다. 이윽고 마지막 숫자가 맞춰지는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의 틈새가 벌어졌다.
천천히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낡은 서류 봉투와 함께 누렇게 변한 상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짧은 탄식이 울렸다. 약간의 실망과 궁금함이 교차하는 묘한 신음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나는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참새가 총총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가을 햇살에 참새의 작은 발자국이 포장도로 위에 찍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나는 어느새 그 뒤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그날의 경험을 일기로 썼더니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표현력이 참 좋구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 보자.”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아버지는 내가 스스로 글을 깨우쳐 칭찬받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했던지, 선생님의 빨간 볼펜으로 칭찬 가득한 일기장을 들고 다니며 자랑하곤 하셨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과 그 손에 들린 일기장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백일장에 나가 글을 쓰던 날, 내 마음은 무거웠다. 머릿속에는 매일 같이 돈 문제로 격렬하게 다투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며칠씩 집을 나가버리셨고, 남겨진 집안에는 폭언과 거친 소리가 메아리쳤다. 부모님은 갈등을 자식들 앞에서도 숨김없이 드러냈고, 그때마다 어린 나는 두려움과 혼란 속에 갇혔다. 옆자리의 친구들이 원고지 위에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조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어 원고지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하자 손이 떨렸다. 내가 본 그대로를 쓰자니 부모님의 다툼과 찢어진 감정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뭔가 쓰려 해도 펜 끝이 머뭇거렸고, 자꾸만 원고지 위에 그어둔 첫 줄을 지웠다.
결국 나는 억지로라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로 했다. 화목한 부모님, 웃음이 넘치는 집안. 그럴듯한 장면을 머릿속에서 꾸며내자 비로소 펜 끝이 원고지를 스쳐갔다. 거짓된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써졌다. 하지만 글이 완성되는 순간에도 원고지 위의 글자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더 깊이 묻어두기 위해 글을 덧씌운 듯한 기분이었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불렀다.
“너 이번 사생대회에서 금상 받았어. 글을 정말 잘 썼구나. 축하해”
나는 귀를 의심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동네 친구가 우리 집 사정을 알 텐데, 내 글을 읽고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난 상장을 드릴까 말까 고민 끝에 아버지께 드리자, 그는 자랑스럽게 동네를 돌며 자랑을 했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참 자랑하고 난 후, 안방 한쪽 벽으로 가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어딘지 고민했다. 그리고 아랫목 이불 속에 손을 넣어 묻어둔 밥공기를 꺼내 밥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걸 상장 뒷면 모서리에 하나씩 짓이겨 벽에 붙였다. 벽에 빛바랜 상장들이 가지런히 붙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어렸다. 그 밥풀은 단순한 접착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표현하는 작은 의식 같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았지만,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꾸며낸 이야기로 상을 받는 것이 부끄러웠고, 진짜 내 이야기를 쓸 자신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넌 정말 좋은 작가가 될 거야. 네 글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제가 쓴 글은 진실이 없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눈물이 쏟아지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우리 집은 늘 싸우고, 아빠는 자꾸 집을 나가세요. 그런 걸 쓰기 싫어서 행복한 이야기를 꾸며냈어요. 그런데 그런 글로 상을 받으니까 너무 부끄러워요. 저 같지 않아서요.”
말을 끝내자 선생님은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도 네 나이 때 글 쓰는 작가가 꿈이었단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교사의 길을 택했지. 그래도 지금도 글을 쓰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그래서 너 같은 아이를 보면, 내 못다 이룬 꿈을 너에게서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나는 선생님의 뜻밖의 고백에 놀라 멈춰 섰다. 선생님이 이어 말했다.
“그런데 방금 깨달았어. 정말 좋은 글은 거짓이 필요 없다는 걸. 네가 오늘 솔직히 털어놓은 것처럼, 네 진짜 이야기를 쓰면 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꾸미지 말고, 너 자신에게 떳떳한 글을 써야 한단다. 그런 글이 진짜 힘을 가지는 거야.”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글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벽에 붙어 있던 상장을 모두 떼어내 버렸다.
그렇게 버렸다고 생각했던 내 상장이 30년이 지나 아버지의 가방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상장 모서리에는 아버지가 자랑하던 순간에 묻은 밥풀이 붙어 있었다.
큰오빠가 상장을 내게 건넸다. 나는 상장을 품에 안고 아버지의 손길을 떠올렸다.
여전히 남의 눈에 빈틈없고 실수 없이 보이기 위해 애써온 내게, 아버지의 보물은 과거의 나와 마주할 용기를 주었다. 둘째가 수능을 앞두고 지원할 학과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나에게 물었다.
“엄마, 꿈이 뭐였어?”
나는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글 쓰는 작가였지.”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했던 상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이룬 작은 성취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잃어버린 꿈과 진실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쇠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상장에 붙였던 밥풀처럼 내 삶을 떳떳하게 붙들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불우했던 가정을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일부이고, 나를 형성한 배경이며, 나에게 용기를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밥풀은 단순히 상장을 붙이는 접착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붙들어 준 사랑과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더는 거짓이 아닌, 나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는 글을 통해 아버지가 남긴 사랑과 나의 가족을 세상에 당당히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께 드리는 가장 떳떳한 대답이며, 나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