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습작 #2 베트남 다낭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다짐했다.
“무례하지 말자. 막무가내로 굴지 말자. 무개념 여행자가 되지 말자.”
그러나 아이들과 20일을 함께한 동남아 육로 여행에서 그 다짐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렸다.
낯선 환경 속의 경계심이 나를 점점 닫히게 만들었다.
슬리핑버스를 타고 도착한 다낭은 낯설고 피곤한 도시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누군가의 호의조차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를 호구로 보는 걸까?”
“아이들 데리고 다닌다고 만만하게 보는 걸까?”
피해의식과 피로감이 뒤섞여 모든 시선이 의심스러워 보였다.
다낭에서 하노이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도착했을 때,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번엔 당하지 말자.’
마음속에 쓸데없는 결심이 단단하게 굳었다.
예매해 둔 기차표를 실물표로 바꾸는 방법을 몰라 나는 기차역을 서성였다.
번호표를 뽑고, 안내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말쑥한 복장에 기차역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는 번역기를 켜서 내게 보여줬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런데 나는 그 친절이 오히려 두려웠다.
‘설마… 가짜 직원? 핸드폰을 노리는 건가?’
그가 내 휴대폰을 받아 자동 발매기로 향하자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의 손에서 폰을 낚아챘다.
그의 표정엔 억울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나는 너를 도와주려는 거야.”
그는 잠시 멈췄다가, 불쾌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다시 처음부터 발매기를 조작해 예매번호를 입력하고, 기차표가 출력될 때까지 도와줬다.
나는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고, 그 뒷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를 도둑으로 몰았던 나의 시선이 부끄럽고, 그의 너그러운 표정이 오히려 나를 작아지게 했다.
비엔티안의 마지막 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내렸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내게 한 툭툭이 기사가 다가왔다.
“어디 가요? 박물관? 탈래요?”
나는 그에게 흥정하듯 말했다.
“오만 낍은 너무 비싸요. 삼만 낍.”
그는 못 이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데 막상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낍짜리 한 장뿐이었다.
잔돈이 없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 오만 낍밖에 없어. 당신이 잔돈부터 주면 내가 오만 낍을 줄게.”
나는 빚 받듯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잠시 나를 보더니, 조용히 주머니에서 이만 낍을 꺼내 건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를 의심하고 있었음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나는 그의 표정에서 그렇게 읽었다.)
나는 그가 돌아서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 의심이 그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하지만 그때 내 표정과 행동은 누가 봐도 경계심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그걸 느꼈을 것이다.
여행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 안의 미숙함을 그대로 비춰준다.
나는 여행을 ‘세상을 보기 위한 길’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 길 위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조금은 손해 보더라도, 조금은 속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더 많은 친절을 더 맑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다낭의 역무원, 비엔티안의 툭툭이 기사. 내 의심과 경계심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날의 부끄러움이, 내 다음 여행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