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습작 #3 _2017년 7월의 동남아, 그리고 지금의 나
그해 여름, 나는 ‘즉흥’이 곧 자유라고 믿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계획은 없었다.
지도를 펼치면 눈에 들어오는 도시 이름만으로 방향을 정했고, 숙소는 그날그날 도착한 곳에서 잡았다.
그땐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함에 낭만을 덧칠한 방랑자 흉내였다.
아이들과 함께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는 그저 미숙한 배낭여행자였다.
“엄마, 다음엔 어디 가?”
“음… 글쎄, 가다가 좋은 데 있으면 거기서 자자.”
그때의 나는 그렇게 웃으며 말했고,
아이들은 내 말에 진심으로 설렘을 느꼈다.
그 순진한 믿음이 내 무책임함을 덮어주던 시절이었다.
방콕에 도착한 날, 공기는 눅눅했다.
거리의 공기에는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와 오래된 배기가스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낯선 나라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카오산로드에서 조금 떨어진 곳,
“한인 게스트하우스”라는 간판을 찾아냈다.
한글 간판이 반가워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그때의 나는 그 한 줄의 한글에 안도했다.
1층은 식당이었다.
볶음국수 냄새가 복도까지 퍼져 있었고, 손님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눌어붙어 있었고, 선풍기에서 나온 바람은 미지근했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엄마! 여기 다락 있어!”
넓은 가족룸, 낮은 천장 위에 만들어진 작은 다락방.
그곳은 아이들에게는 비밀기지였다.
나는 그 모습에 웃으며 안도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오늘은 그냥 편히 자자.’
짐을 풀고 사장님께 하루 더 묵을 수 있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그의 말에 별 의심 없이, 다음 날 아침 숙박료를 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진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사장님이 문을 두드렸다.
“오늘 방 비워주세요.”
“네? 어제 하루 더 묵기로 했잖아요.”
“결제 안 하셨잖아요. 다른 사람이 예약했어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 네…”
그 말에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
무더운 아침 공기 속에서 다시 짐을 쌌다.
아이들은 묵묵히 짐을 챙겼다.
바로 옆방 트리플룸으로 옮겼다.
‘이젠 괜찮겠지.’
왕궁을 다녀오고 돌아온 오후 다섯 시, 문을 열자 방 안은 사우나 같았다.
에어컨을 켰지만 미지근한 바람만 흘러나왔다.
땀은 식을 새도 없이 다시 흘러내렸다.
조심스레 사장님을 찾아가 말했다.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아요.”
그는 덤덤히 대답했다.
“오늘은 수리하는 사람 없어요.”
“그럼 방을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없어요. 대신 도미토리로 가세요. 남녀공용인데 넓고 시원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지금 남자들도 자고 있는데요?”
“그것도 추억이에요.”
그 말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도 추억이에요.’
당시에는 그 말이 어이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가끔 그 문장을 떠올리며 웃는다.
불편함 속에서도 추억이 남는다는 건, 그때의 내가 몰랐던 진리였다.
결국 사장님은 마지못해 작은 2인실을 내주었다.
“이 방은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그 말에 묘한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그 방은 정말 작았다.
세면대는 기울어져 있었고, 샤워기에서는 미지근한 물만 나왔다.
우리는 침대 위에 셋이 꼭 붙어 누웠다.
창밖으로는 방콕의 밤이 깜빡였고, 아래층에서는 파티가 한창이었다.
맥주병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배수관에서 울려오는 “쿵쿵” 소리.
아이들은 피곤에 겨워 금세 잠들었지만, 나는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것도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그 말이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였다.
다음 날, 기차 시간이 남아
“샤워만 하고 가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1인당 30밧요.”
옥상으로 올라가니, 낡은 철문이 덜컥거렸다.
샤워실은 반쯤 열려 있었고, 한쪽엔 오래된 남자용 변기가 있었다.
천장은 뚫려 있었고, 햇살이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아들이 샤워를 하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밑에 사람하고 눈 마주쳤어!”
그 말에 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황당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은 평화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웃음이야말로 불편함을 이겨내는 가장 순수한 방식이었다.
그때의 나는, 여행을 ‘참는 법’이라 착각했다.
불편함을 견디는 게 미덕이고, 고생이 곧 추억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자기희생에 가까운 낭만주의였다는 걸. 이제는 숙소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묻는다.
“여기, 잘 잘 수 있을까?”
깨끗하고 조용한 방, 쉬어갈 수 있는 공간 —
그건 사치가 아니라 여행의 기본 조건임을 배웠다.
그날 밤의 더위와 소음, 아이들과 셋이 한 침대에 꼭 붙어 잤던 순간이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리워진다.
불편했지만 따뜻했고, 힘들었지만 결국 웃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서툴렀고,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여행의 희비는 숙박이 좌우한다. 그러나 여행의 성장은, 결국 나 자신이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