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라면천원의 시작
따스한 봄날,
햇살은 부드럽게 창문을 타고 내려앉았고, 정훈의 마음속에는 어느 날 밤 꾼 꿈이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공간.’
그 문장이 가슴 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더 이상은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 없었다.
정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실행할 때야.”
첫 번째 가게는 경기도 김포의 한 대로변.
특별할 것 없는 건물 1층의 작은 점포.
하지만 그곳엔 남다른 간판이 걸렸다.
‘라면천원’
검은 바탕에 정갈한 흰 글씨, 그리고 빨간 원 안에 선명히 찍힌 숫자 1000.
처음 보는 이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진짜 천 원이에요?”
“그럼요. 딱 천 원입니다. 아무 조건도 없어요.”
의심스러운 눈빛, 조소 섞인 미소,
“저 집, 한 달도 못 가겠네…”라는 말 없는 비웃음이 오갔다.
하지만 정훈은 담담했다.
그는 이미 마음속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단돈 천 원으로도, 한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간극이 있었다.
첫날, 손님 두 명.
둘째 날엔 넷.
셋째 날은 단 한 명뿐.
그리고 넷째 날, 문을 닫고 나오는 길에 정훈은 리치가 전단지를 물고 뜯고 있는 모습을 봤다.
“리치야… 전단지도 우리의 돈이야.
함부로 쓰면 안 돼.”
리치는 어쩐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게 입구에 조용히 엎드려 손님을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정훈은 피식 웃었다.
어디선가 작은 희망이 움트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던 중학생 무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와~ 개 귀엽다!”
“얘 이름 뭐예요?”
“사진 찍어도 돼요?”
정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가게 막내, 이름은 리치야!”
그날 이후, 리치는 '라면천원'의 간판 마스코트가 되었다.
목엔 빨간 머플러, 목걸이처럼 건 작은 푯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천원짜리 라면은 여기요!”
학생들은 리치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고, #리치라면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루 만에 '좋아요'는 무려 1,024개.
다섯째 날.
아침부터 가게 앞에 줄이 생겼다.
배고픈 학생들, 점심을 서둘러야 하는 직장인들,
배송 일정을 쪼개 온 택배 기사들,
취업 준비에 지친 청년들까지.
“사장님, 여기… 고춧가루 조금만 더 넣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리치도 매운 거 좋아해요.”
주방 안에서 라면을 삶는 동안, 손님이 오면 리치가 작게 “왈!” 하고 짖었다.
그 짖음은 마치 또 다른 종소리처럼 들렸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라면 한 그릇 준비돼 있어요.”
첫 달, 매출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정훈에게 진짜 의미 있는 수익은 따로 있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라면을 천천히 먹고,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눈가를 훔치며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이 천원 라면…
저한테는 정말 큰 위로예요.
오늘 하루, 다시 살아볼 용기가 나네요.”
정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깊은 곳이 뜨겁게 차올랐다.
단순한 장사 그 이상이었다.
‘이 한 그릇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이유가 될 수 있구나.’
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 정훈은 리치를 끌어안고 조용히 말했다.
“리치야… 우리가 가는 길, 절대 흔들리지 말자.”
“천원이 만드는 변화, 정말로 보여주자.
돈보다 따뜻한 세상, 우리 손으로.”
리치는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작은 눈을 감으며, 가만히 정훈의 품에 기대었다.
그 작은 가게, 그 작은 강아지, 그리고 단돈 천원짜리 라면 한 그릇이 조금씩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훈의 가족은 또 한 번, ‘마음이 부자인 삶’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단돈 천원으로.
그리고 리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