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의 권한, 남에게 맡기지말라
강직한 군인의 표상 박정훈 대령이 무죄가 확정되어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직했다고 한다.
VIP 격노에 굴하지 않고 부당한 명령을 마다하며 직을 걸고 싸운 군인이 늦게나마 직을 회복했다하니 다행스럽다.
그는 양심의 법정에서는 진즉 무죄였다. 수사단 부하들과 주변의 지인들은 천상 군인인 수사단장의 양심과 판단을 믿고 따랐다.
시간이 지나며 해병대 예비역들도 외롭게 싸우던 박대령 옆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무죄 선고가 내려진 시점이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해병대에게 항명만큼 무거운 죄는 없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해병대 예비역 전우들은 수사단장의 항명은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는 의로운 시도로 판단한 것이다.
양심을 걸고 보수적인 완강한 군조직과 무도한 권력에 맞서 마침내 사법적 무죄를 쟁취한 그는 진정한 참군인이라 할 만하다.
그는 권력의 도구를 거부했다.
권력자의 편에 서서 부하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저항했다.
지난 주말 제주에서 올라온 선배의 초대로 연극 '킬링 시저'를 봤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인(시오노 나나미)이라는 줄리우스 시저는 BC 44년 의회당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암살당한다.
배후는 원로원 귀족, 행동대장은 카시우스와 명연설가 브루터스.
훗날 세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브루터스, 너마저도'에 의해 브루터스는 배신과 반역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연극 '킬링 시저'의 해석은 달랐다.
브루터스는 시저의 총애를 받던 젊은 정치인이었다. 암살후 분노한 로마시민을 달래기 위해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게 아니고, 로마의 자유를 더 사랑했을 뿐." 이라며 호소했지만, 그것은 시저 암살후 만든 명분이었고 그는 암살 참여 제안을 받을 때부터 멈칫하고 주저한다.
원로원 귀족의 정치적 도구로 쓰임을 염려한 탓이다.
권력의 주구로 전락할 수 있는 자신의 신세를 걱정했으나, 브루터스는 결국 암살단에 합류했고, 그는 시저 사후 권력투쟁에서는 카시우스와 정치적 반대입장인 안토니우스에게도 이용당한다.
브루터스는 시저를 암살하는 과정에서는 카시우스 편에 서고, 암살후에는 시저의 군사적 동지인 안토니우스와 한 편이 되는데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킬링 시저'는 시저를 죽이려는 카시우스와 지켜야하는 안토니우스, 상반된 입장의 두 인물을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두 인물은 계속 브루터스에게 속삭이고 회유한다. 그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내어준 브루터스는 그들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연극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한 브루터스의 한탄과 좌절로 막을 내린다.
내 운명, 스스로 결정해야한다.
의사결정의 권한을 남에게 의지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내란의 주요 임무종사자 혐의를 받는 방첩사령관이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권력자의 명령 수행을 거부하고 군복을 벗겠다며 재판부에 호소한다고 한다.
자기 의지없이 도구로 쓰였다며 내란 동조를 후회한다고 했다한다.
내란에 동조하고 방관한 세태를 지나고보니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박정훈 대령의 항명이 새삼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