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면 삶의 동력이 된다
직장생활하는 후배들이나 취업을 앞둔 조카를 만날 때 불편한 자리를 마다하지 말라고 조언하곤 한다.
을의 입장에서 갑을 마주하는 자리나 사장님과의 독대는 불편하게 느끼는게 인지상정이나, 그런 자리에 익숙해져야 단단해지고 성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내 직장생활이 그러했다.
서른을 넘겨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일본계 회사는 매일 전 직원이 모여 아침 조회를 했고, 사십 명 남짓한 직원들 앞에서 순번을 정해 5분 스피치를 해야 했다. 스피치의 주제는 개인의 일상이나 직장생활의 개선사항 같은 것으로 발표자 맘대로 정할 수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처음 단상에 서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한국 유통시장의 업태별 시장규모와 경쟁사의 영업 현황을 주제로 발표했다.
경력직으로 입사했지만 일개 영업사원이 소화하기엔 벅찬 주제였다. 하지만 공들여 준비했고 발표를 마쳤을 땐 직원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있었고, 따로 사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발표 내용을 1장의 도표로 요약해달라고 했다.
신문기사는 물론, 유통사와 경쟁사의 사업보고서와 IR자료 등을 찾아가며 도표를 완성했을 때 일본인 사장님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그렇게 수년을 보내고 규모는 작지만 내실있는 국내 총판으로 이직했다. 회식자리, 불호령을 내리는 호랑이 사장님 앞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었는데 두어달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다. 두주불사 사장님과 술잔을 주고 받으며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듣는 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장님은 내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렇게 신뢰가 쌓여가며,
내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뢰관계,
퇴사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장님과 연락을 나누고 있다.
이틀 전 처가 시골집에 다녀왔다.
수년전 할머니 돌아가신 후로 빈 집이지만 장인어른이 가끔씩 왕래하며 쓸고 닦고 가꾸신 덕분에 하룻밤 머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처제네 가족들과 우리 부부, 장인 어른까지 일곱 명이 노부부 사시던 공간에서 밥 세 끼를 만들어 먹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방에 머물며 심심함을 즐길 나이, 대학생 조카들도 관광지도 아닌 시골 하룻밤 여행에 엄마 아빠를 따라 왔다.
군입대를 앞둔 조카와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카가 대견스러워 카톡으로 용돈 10만원씩을 보냈다. 불편함을 감수한 댓가였다.
처가의 이모님께서 장인어른과 우리 가족이 시골에 들른다는 소식을 장모님께 전해 듣고선 복숭아 2박스를 택배로 보내셨다.
후식으로 딱딱이 복숭아를 깍아 먹고, 이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다행히 내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어 내 휴대폰으로 전화드리니 이모님이 반갑게 전화를 받으신다. 전화를 하고싶어도 건강상태가 어떨지 몰라 전화를 못했다고 하시며 간간이 언니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다고 말씀하신다.
빨리 건강 회복해서 장모님이랑 같이 놀러오면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하시길래 제가 소고기 대접하겠다고 하니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처이모님과 전화통화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처이모님과의 소통, 처음부터 편했겠는가? 하지만 불편함은 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사람 사이는 따뜻해진다.
또한, 그 따뜻함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