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금술사와 유토피아 코리아
어제밤 마눌과 같이 요가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공동현관 앞 우편함을 확인하니 3.2 파운드 우표 위에 런던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가 있었다. 딸들이 보낸 것이었다.
군시절 친구들의 격려 편지 이후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는 처음 받는다. 그만큼 소중하다.
집으로 들어와 마눌이 읽어 주겠다는걸 마다하고 꼭꼭 씹어 밥먹듯 한글자 한글자 읽는다. 정자체도 아니고 글씨체가 작아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직접 손으로 한글자씩 짚어가며 읽는다.
4월초 큰 딸이 어학연수차 떠났다.
6월말 방학하자마자 둘째도 언니랑 지내겠다고 짐을 꾸렸다. 둘째 떠나고 한달여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둘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칼 등 남유럽을 여행했는데 그 여행중 그림엽서에 색칠을 하고 글을 써 보낸 엽서였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뻔한 스토리지만, 그래도 반갑고 고맙다.
부모 곁을 떠난 얘들이 조금씩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싸우지않고 지내기만 해도 용한데 자매간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언니는 하교후 동생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다음날 아침 동생은 등교하는 언니를 위해 샌드위치 도시락을 준비한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는 스페인의 양치기 목동이 나만의 신화, 즉 자아를 찾으려 피라미드를 향해 떠나는 모험담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소년 산티아고가 신학교 공부를 중단하고 세상을 여행하며 사는 일을 찾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금화를 내어주며 말한다.
아들아, 네가 사는 이 성이 가장 가치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 우리가 사는 이 마을의 아가씨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느낄 때까지 멀리 여행하고 돌아오렴
딸들이 여행을 계획할 때, 떠나보내는 내 마음은 언제나 산티아고의 아버지 마음이었다.
낯선 땅에서 길을 헤메이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체험을 통해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우리 땅에서는 보지못한 자연의 아름다음에 감탄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타인의 친절에 고개 숙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발딛고 사는 땅의 소중함과 내 주변 살을 맞대고 손을 맞잡는 사람들의 귀중함을 몸소 느끼고 돌아오길 바랬다.
선진 문물의 화려함에 취할 수 있고 낯선 땅의 새로움에 반할 수 있지만, 고향의 향취를 그리워하고 새삼 가족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품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지, 내가 지금 가진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채우며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랬다.
진정한 깨달음은 부모라도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느끼는 가치라야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헬조선을 떠나겠다는 젊은이가 많다. 우리나라는 싫다고 한다. 뚜렷한 근거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외국에서 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고 한다. 그 열정을 여기에서 쏟는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조언도 별 소용이 없다. 이미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며 애태우는 부모들이 있다.
중이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날 수 있냐, 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절이 싫다면 절을 고쳐야 한다.
그 절을 내가 살 수 있게끔 바꿔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절밥 먹여준 절에 대한 진정한 예의이다.
내가 싫다고 떠나면 그 뒤에 들어온 중인들 별 수 있겠는가.
헬조선을 파이팅 코리아로 바꾸어야 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땅을 유토피아로 느끼도록 어른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냉소를 거두고 애정을 보여야한다.
젊은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이 땅을 고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