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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제란 Nov 30. 2023

넘지 못할 산

종종 그런 산 앞에 놓인다.


산은 정상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나는 계속 그 높이만 가늠하느라 목이 아파온다.


정상은 한번 쳐다만 주고 일단 오르는 게 가장 빠른 일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계속 고개를 들어

뭐가 필요할까, 사다리? 곡괭이? 등산지팡이? 나침판? 가면서 배고프진 않을까?

등산을 위해 방법을 고안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발을 내딛기 싫어 시간을 버리고 있다.


정상은 한번 쳐다만 주고 일단 오르는 게 가장 빠른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다 옆의 동료에게

이건 안될 것 같지 않아? 포기할까? 내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범위잖아 이건.

본인과 타인에게 합리화를 시도한다.


일단 오르는 게 가장 빠른 일이라는 걸 알지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테니까.


발 밑을 보니 자갈 몇 개만 치우면 일단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가볼까? 아, 가기 싫은데. 힘들 거 뻔한데. 지난번에도 멋모르고 갔다가 죽을 뻔했잖아.

겁이 나 선뜻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죽을뻔했지만, 결국은 넘어간 적이 있다는 사실은 뒤로한 채.



사람은

산을 넘어본 경험으로 더 큰 산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과

산에서 죽을뻔한 경험으로 산은 쳐다도 안보는 사람이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후자에 속한다.

도전할 능력도, 용기도 없으면서 등산하기 전에 노련하게 장비 챙기는 옆사람을 열등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간혹 같이 가겠냐며 제안하는 상냥한 사람도 있지만 차마 그 마음에 보답할 자신이 없어 거절한다.

그들의 도전은 아름답고 대단하다. 대조적으로 나는 이렇게 백날천날 산 앞에 주저앉아 위로, 옆으로 고개만 까딱하다 시간을 버리겠지.


언젠가 나도 용기와 능력을 갖고 장비 챙길 날이 올까.


언젠가 나도 자신만만하게 도전하는 날이 올까. 사진 출처 : 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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