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윙맨 Feb 10. 2018

김연아 평창올림픽 위인전

그녀의 13년

평창올림픽이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대하드라마로도 못 쓸만큼 많은 이야기가 깃든 한국 최초의 동계올림픽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항상 그 자리에서, 평창올림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연아에 대한 고마움으로 김연아에 대한 글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빵을 좋아하는 꼬맹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트를 한다고 한다. 모두 이 아이의 꿈을 비웃었다.


아무도 이 꼬맹이가 여왕이 될 줄은 상상하지 않았다.








처음 연아가 평창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것은 13년 전인 2005년이었다.

2014 평창올림픽을 유치한다고 홍보대사가 됐다.


이때까지 연아는 피겨 불모지의 유망주 정도였다.







연아의 동계스포츠의 이 미칠듯한 사명감은, 2007년 인터뷰에서 볼 수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토론토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연아에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는 2014년 평창에서 반드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면 동계종목의 저변이 크게 늘어나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김연아/피겨 국가대표 : 우리나라가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였는데 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면 동계스포츠가 많이 활성화될 것 같아서 꼭 개최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2014 평창올림픽 유치는 실패했다.









2009년 강원도는 삼세번이라며 평창 동계올림픽 재도전을 선언했다.

김연아는 기꺼이 평창올림픽 홍보대사가 되기로 했다.


이제 김연아는 숙녀티가 났고,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김연아는 밑도끝도 없이 발전하기만 한다.


2010년 일본의 피겨에 대한 엄청난 투자 인프라 속 피겨 스타들 아사다마오와 안도미키를,

김연아는 혼자의 힘으로 따돌리기 시작한다.






혼자서 외롭게 싸웠고, 혼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 불모지에서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국내에서 피겨전용 연습장은 태릉선수촌뿐이었다)






밴쿠버 올림픽의 금메달을 기점으로 김연아는 퀸연아가 됐다.









이때부터 김연아는 종종 대통령들과 사진이 찍히는 

스포츠 선수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스포츠인이 됐다.







올림픽 끝나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선수위원 임명








2011년 3월, 세계스포츠기자 총회 개회식

아직은 이런 행사도 이런 옷도 어색하기만 했다.








스위스 로잔에 가서 PT를 하고...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홍보하고

PT하고

유치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사실 이명박 때야 이런 모습이 좀 기분 나쁘긴 해도 

평창올림픽 자체는 건들지 않았었다.






기자회견해서 소치올림픽 집중한다고 했는데,

동계 스페셜올림픽 있다고 또 투입됨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는 이렇게 끝났다.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


그것을 확인하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끝났다.

그래도 그녀는 어른스러운 강철 멘탈을 보여줬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이었다.

박근혜는 최순실과 김종, 차은택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수익모델로 생각하고 있었다.


평창 올림픽의 모든 것을 건드렸다.

평창올림픽이 망할만한 모든 요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김연아는 괄시당했고, 푸대접받았다.

온라인에는 김연아를 미워하는 자들이 참 많았다.







이 장면이 이상한 흐름들을 이해하게 해준다.

물론 이 순간 때문에 삐쳐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장면은 김연아는 상대가 힘이 세다고 

비겁해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힘세고 저열한 자들에게는 가장 미운 스타일이다.









김연아는 찍혔고, 평창올림픽은 점점 더 외면받았다.

사실 김연아는 평창올림픽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박근혜는 물러났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 상처가 너무 커서 외면했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었다.


지금부터 해서 어떻게 살리냐고?







7월 말에 이 두 사람이 만났다.

이 아재와 이 동상은 포기하지 않겠단다.


평창올림픽 보러 오란다.


함께 응원하잖다.







개막하기 전에 평창 올림픽 홍보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다녔다.

어떻게라도 한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UN에 가서 연설도 하고 왔다.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다.

평창에서 보자!






성화의 처음도 김연아였고 끝도 김연아였다.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상징이자, 평창 올림픽의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더럽게 멋있게 저기 서 있었다.

다행히 연아의 노력이 퇴색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땀이 뭉쳐져서 평창올림픽의 시작은 대성공이다.







기레기들과 야당놈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역대 최대 규모에 개막식도 대성공이었다.








그래도 이 시작과 끝에는 김연아가 있었다.

김연아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13년간의 세월이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그 기간동안의 뉴스를 살짝 모니터링 해봤는데..


'대회 준비 - 평창 - 대회 - 평창 - 대회준비 - 평창...'의 무한 반복이었다.


연아에게 참 고맙다








자네 위인 한 번 해 볼 생각 없나?





빵은 마음껏 주마!

작가의 이전글 살아오며 실수를 통해 배운 18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