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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윙맨 Apr 08. 2018

전명규 왕국과 '진짜 미투'가 필요한 빙상연맹

어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뒤늦게 봤다.

전명규 왕국인 한국 빙상계를 다룬 내용이었다.


꼭 한 번 찾아보기를 추천해본다.




다섯 줄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논란의 팀추월 경기에서 당사자들은 모두 숨었다. 노선영을 제외하고는...

노선영의 작전 수행 미숙으로 프레임 전환 시도를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한국 빙상계는 한 교수의 말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철저하게 응징한다.

이 못된 프레임 장난질에 언론들도 합류한 정황의 녹취가 공개됐다.

한국 빙상계에는 왕이 존재한다. 한국체대 전명규라는 사람이다. 




개인으로는, 법적으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너무 오래돼서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다.

한국 빙상계에는 전명규 신화가 있다.






문제가 발생 후 그들은 프레임 전환 시도의 기자회견을 한다.

이때부터 이들은 반전을 시도했고, 그에 따라 이들은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게 됐다.


기자회견 이전까지는 어린 선수들의 사회화/인성 교육의 문제로 끝낼 수 있었다.

기자회견 이후부터는 사건 및 빙상연맹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은폐의 문제가 됐다.  







프레임 전환 작전 수행 문제 역시 조금만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지만,

해외의 전문가들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밝힌 대로라면 마녀사냥을 당해서 억울해서 당장 인터뷰에 응해야 하지만,

누구도 연락이 안 된다.


노선영 선수만 취재에 응해왔다.







인터뷰를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의 여론과 언론의 흐름을 보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낙인만 찍힌다는 것을 인지하고, 용기 있게 싸우기로 결정했다.






방송에서는 끊임없는 증언들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는 필수였다.

그들은 왕이 두려웠다.







팀추월 사건 이후 기자회견의 주역 백철기와 A 관계자의 통화라고 한다.


감독과 관계자의 통화 같은가? 

위력에 의한 입맞춤 강요 같은가?



각자가 판단하면 될 듯하다.






증언들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 선수는 조금 과장하는 것 같았다.

신뢰성 떨어지게끔...







영상을 구해서 봤더니 진짜였다.









피해자들도 즐비하다.

위력에 저항했던 이들은 철저하게 당했다.






한국 빙상계에는 왕이 한 명 있다.

왕의 등장이다.


한국체대의 전명규 교수다.

방송에서는 수차례 반론권을 제공했지만, 전혀 응하지 않았다.








외국인 감독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 왕의 힘이다.

그는 한국 빙상연맹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피아 같았어요


과연 일개 선수가 싸울 수 있는 힘이었을까?








SBS가 취재에 들어가자 이상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채로 지엽의 지엽의 영역에서 호들갑을 떤다.



한겨레 기자들은 [단독]으로 이런 기사를 탐사 취재해야 한다.


왜 한겨레는 한걸레가 됐는가?







누군가가 녹취를 USB에 담아 제공했다.

그리고 왜 그런 기사들이 나왔는지에 대한 추정을 가능케 했다.









단지 팀추월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빙상연맹이 관여하는 모든 빙상에서의 문제다.


공정성, 객관성, 스포츠맨십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왕의 의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취재를 통해 의외의 1승을 거둔 이들이 있다.


김아랑, 단국대, 고양시청 



이곳에는 빙상연맹의 왕의 입김이 닿지 않는다.







마지막은 한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였던

노진규 선수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평창에서 뛰어보고 싶었다던 노진규 선수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였다.






하지만 노진규를 평창에서 볼 수 없었다.

아니,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







미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렇기에 변질된 페미투를 보고 분노하는 거다.


진짜 미투가 필요한 곳에는 쓰지도 못하게 만들고,

미투에 대한 반감만 잔뜩 만들어놓은 채로,

일부 여성들의 성과급 잔치로 만들어놨다.





미투는 이런 데 쓰는 거다.

두려워서 저항할 수 없을 때,

 시스템 자체가 은폐에 동조할 때,

한두 명의 개인 정도는 묻어버릴 수 있을 때,

피해자들이 대중과 연대하여 싸우고자 할 때 미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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