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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윙맨 Apr 21. 2018

서지현 미투 고발은 누가 사라지게 했는가?

너무도 당연히 예상됐던 일이 현실화가 됐다.


대한민국 미투의 실질적인 시초, 서지현 검사의 미투였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발은 사라졌다.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뉴스에서는 매일 새로운 미투 고발이 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이번 주에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서지현 검사가 출연했다.


그리고 미투 동조자들이 주장하는 반미투의 선봉 주자 김어준과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는 서지현 검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미투 고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인터뷰가 이어졌다.


잊혀졌다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또 만능통치약 페미 용어 '남성 기득권'을 들이댈 텐가?




그리고 이어서 왜 김어준을 인터뷰어로 선택했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에 대한 서지현의 답변이다.


적어도 언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해자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 이가 김어준이었다.

(사실 상식적인 대중들은 상당수가 김어준과 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언론들이 미쳤을 뿐이지)








최소한 한국의 미투 시초는 상식적인 고발을 하고 있었다.


미투 활동가들이나 페미 전사들에 의해 세뇌당한 여성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 기득권이라는 마법의 언어를 사용하며 남성을 적으로 만들려는 생각도 없었고,

권력에 문제에 대한 약자의 사회적 고발이라는 미투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상식적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투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정의의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하는 사람을 미투의 적이라 규정지었고,









미투에 대한 고민도, 미투 당사자에 대한 이해도 전혀 하지 않은 채

정치적 목적으로 충분히 써먹었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그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의 뿌리까지 뽑으려 했다.






지금 미투의 들불이 사라진 것은 누구나 예측한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미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을 멸시하며,

무조건 여자가 약자라며 약자 편을 들라 하고,

남자는 적이라고 간주하고 공격해야할 대상이고,

합리성과 논리성을 배제하고 정서적으로만 보고,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정의라고 착각한 채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무시한 채,

한없이 멍청한 방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정말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산 신도시 택배 사건'의 페미 버전이 한국에서의 미투 활동이다.



철저한 정서 이기주의에 기반한 일방적인 강요



당연히 상식적인 사람들은 그들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고,

그 '미투' 키워드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진짜 필요한 사람들의 호소와 외침은 외면당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근자감으로 이런 식의 미투 활동이 지속가능하리라고 생각했는가?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나 역시도 답답한 마음에 계속 글을 썼었다.

이 사회에 미투가 반드시 필요했었고 존속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쓰다쓰다 답답해서 결국 포기하고 미투 반대 선언을 했다.



생각 좀 하라고 ㅅㅂ



나는 당시의 미투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미투를 진지하게 고민했거나, 미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간절했다면 훨씬 더 냉정하고 진지했어야 한다.



화풀이 용도로, 한풀이 용도 따위로 미투를 대하던 이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미투를 더럽히고 소멸시키는 과정을 봐야 했다.




그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랬던 걸까?


단지 여자라서?

단지 진보라서?

단지 페미라서?

단지 멋있어서?

단지 기회라서?

단지 떡고물에?

단지 옳았어서?




나는 그들이 변화를 바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변화를 생각했다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다수를 동참시켜 플러스를 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이너스로 배제해갔다.




이건 멍청함의 문제가 아닌 의도의 문제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언론계에서도 많은 심각한 미투들이 나왔는데,

미투가 살아있을 때도, 커진 적이 한 번도 없다.








결론: 털보 못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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