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에서...
관심 안 가지겠다는데,
왜 자꾸 내 블로그에 와서 작업을 해?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작업질을 하는지라,
간단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깨움 학습 포스팅을 하기로 했다.
오늘 위의 포스팅에 갑자기 여러 개의 댓글들이 달렸다.
그중 하나를 소개해본다.
댓글을 보면 정치는 잘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굉장히 지지하는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도 정치를 잘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난 것 같다.
댓글 스타일로 분석해보면, 30~40대의 문재인 대통령을 팬덤으로 지지하고, 문체가 과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주부를 스타일링한 듯하다.
3~40대 여성 정알못 감성적 문재인 팬덤
물론 글의 내용과 문맥과는 상관없는 댓글이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난독일까? 오독일까?
난독이라면 황당해하며 지나가도 되는데, 오독이라면 특정의 목적성이 있다.
의도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은 뒤에 댓글 다는 사람이 혼란스러워해서 영향을 받거나, 혹은 미리 댓글 달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함이다.
사실 여러 개 달린 댓글들만 봐도 대충의 특성은 파악된다.
1, 댓글, 답글을 여러 개를 달며 팀플을 한다.
2. '선동'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3. 블로그 글을 삭제하기를 희망한다.
공통점과는 별개로 최근의 이간질 코스프레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과하게 결합시켜 명분을 삼는다.
기존에는 '애국, 국익' 명분으로 국민들을 이간질시켰다면,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잘하면서 지지율이 70% 이상이기에 '문재인' 그 자체를 명분 삼아서 문재인 지지층을 이간질시킨다.
혹시나 하고 기존 이력들을 검색해봤다.
있네?
그래서 확신하게 해 준 ksu7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쓰게 됐다.
댓글이 달린 글이 어떤 글이냐 하면, MB가 1차 방어선으로 잡아놓고 가장 거칠게 저항하던 박형준 저항선이다.
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던, 당시에도 수많은 팀플이 이루어졌던 글이었다.
박형준은 MB 실드를 노린 것이지만, 노무현의 정신을 직접 비하하는 격이 돼서,
유시민이 전에 없이 분노했던 3단호박 사건을 정리했던 글이었다.
오늘자 ksu7은 '3~40대 여성 정알못 감성적 문재인 팬덤'이었다.
하지만 2017년의 7월 말 ksu7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4~50대 자칭 정잘알 헛똑똑이 꼰대
1년 동안 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별일은 없었을 거다.
그냥 저 때는 저게 옳았고, 지금은 이게 옳은 거다.
2017년 7월엔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일반인은 어려워서 관심 가지기 골치 아픈, 전문적인 내용이 나왔기에 전문가 코스프레가 좋았던 것이고,
2018년 6월엔 문재인 지지자들의 지키겠다는 정서적 몰입으로 인해 그 틈이 크게 벌어져서 문재인 지지자 코스프레가 좋은 거다.
그냥 그뿐이다.
여기서 꼭 동시에 진행되는 작업이 팀플이다.
혼자 떠들면 사람들이 신경 안 쓰지만, 몇 명만 함께 떠들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런 팀플 공식인데 한 명쯤은 유독 길게 글을 쓴다.
그냥 길게만 쓴다. 궤변으로 엿처럼 늘려놔서 별 의미는 없고 읽을 가치도 없다.
길게 쓰고 뭔가 데이터를 나열하면 맥락 독해를 못하는 이들에게는 논리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런 글 하나를 기점으로 팀플을 한다.
대충 위 긴 댓글의 수준을 알아보고자 다른 댓글을 가져와봤다.
그렇다.
증거조작하다가 개망신을 당한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저렇게 표현하는 정도의 수준뿐이다.
그리고 이런 조각들을 조합하여 여론인 것처럼 들이댄다.
이 내용들을 인지하고 바라보면,
블로그에서는 작업량이 조금 줄어서 예전보다 약해졌지만,
커뮤니티나 SNS 상에서 수준 이하의 글에도 이런 무조건적인 동의 댓글과 추천이 엄청나게 늘어난 현상을 최근에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괴벨스의 선동 이론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이 작업들의 목적은 그들 스스로 여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론처럼 보이게 꾸며서 대중들에게 분노에는 합리화를, 게으른 사유에는 정당화를 부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