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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로 Oct 03. 2021

몬트리올의 시간 - 나뭇잎의 집

여행, 그 순간에 머물다

종이컵에 담겨있는 작은 식물들.


Cafe Leaves (카페 리브스)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초록이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선인장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록색 잎사귀들이 흰색 종이컵에, 혹은 갈색 화분에 담겨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라면 커피보다는 차, 그것도 녹차나 우롱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하지만 내게는 커피의 강력한 카페인이 간절했기에, 다른 카페를 찾으러 나가는 대신 안쪽에 있는 바리스타에게로 다가갔다. 어떤 빈이 있는지 묻는 것도 잊은 채 더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바리스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몸이 굳었다.


나루토?


잠시 멈춰섰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무심하게 계산을 마치고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다가가는 그는, 그랬다. 나루토일리 없었다. 조금 길지 않나 싶은 새카만 머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엷은 파랑의 눈동자. 어딘가 부조화하게 느껴지는 인상에 기억 세포가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 자세히 본 그는 사실 나루토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받아 들며 그의 얼굴을 슬쩍, 그러나 집중해서 보았다. 역시 아니었다. 안도인지 실망인지 모를 미묘함이 가슴 밑바닥에 내려앉았다.


카페를 나와 걸으며, 순식간에 비어버린 작은 컵을 바라보았다. 흰색 종이컵에 찍힌 나뭇잎 모양의 스탬프. 이와 같은 모양의 컵들에 담겨있던 선인장들. 같은 컵인데, 어떤 컵에는 선인장이 담기고 어떤 컵에는 커피가 담긴다는 것. 종이컵에 담겨서도 선인장은 괜찮은 걸까. 아무리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지만, 그래도.


일본인 혼혈이라고 그는 말했다. 웬만한 동양인보다도 검은 흑발과 때로 얼어붙을 듯 차갑게 느껴지던 파란 눈동자는, 일본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거라고. 하지만 프랑스인이라는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동양인의 느낌을 거의 찾을 수 없는 그의 얼굴과 흑발의 조화는 이질적이었다. 나는 약간의 호기심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내게 다가오는 그에게 늘 일정 거리를 두다가 결국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리라는 건,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금발로 머리를 물들였던 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루토라는 만화, 알아?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본 적은 없었다. 고개를 젓는 내게 그는 일본에 교환학생 갔을 때 생긴 별명이라고 했다. 나루토라는 만화 주인공이 금발에 파란 눈이거든. 막상 찾아본 만화 주인공은 그와 딱히 닮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를 나루토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잊어버린 지금도, 나루토라는 그의 별명만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리고 검은 머리에 파란 눈앞에서 그 기억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젠 소용없을 죄책감과 함께.


걷다 보니 하얀 나뭇잎이 흔들리는 나무가 보였다. 하얀 나뭇잎이라니, 비현실적인 느낌에 다가가 보니 나무가 아니었다. 그건 하얀 종이를 늘어뜨려 나뭇잎처럼 만든, 나무 조형물이었다. 잿빛으로 가라앉은 도시 한가운데에서 나무 조형물들이 하얀 종이를 나부끼며 줄지어 서 있었다. 비라도 온다면 이 종이 나뭇잎들은 온통 젖어 길거리로 떨어져 버릴까. 그렇다면 그걸 낙엽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하며 그 아래 비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sad...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 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났다. 창백한 파란 눈, 그의 눈을 볼 때 느껴지던 어떤 서늘함, 그 뒤에 가려져있을 불안과 체념, 그리고 가늠할 수 없을 깊은 슬픔 같은 것들. 그와 함께 했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 듯한 루 리드의 목소리. 그토록 좋아하던 이 노래를, 루 리드의 목소리를, 그 후로 한동안 듣지 못했던 것도. 문득 그 노래가 듣고 싶어져 헤드폰을 꺼내려다 아직도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본다. 비어버린 지 오래된 하얀 종이컵.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컵에는 그러나, 여전히 커피 향이 배어 있었다. 그제야 커피 맛이 어떤지 음미하지도 않고 그냥 마셔버렸다는 걸 알았다. 희미해지는 커피 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을까, 컵을 들어본다.


남아있는 건 씁쓸함, 텁텁할 정도로 진한 씁쓸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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