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낙방과 한 번의 성공 사이에서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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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이어)
병역판정전담의사 1년차로 부임하면서 USMLE Step 1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군 대체복무를 시작한 지 수개월 후에는 공학대학원 컴퓨터공학전공 석사과정까지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병무청 판정업무가 끝난 후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에는 공학 공부에 집중하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USMLE 공부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단기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 세운 장기계획은 1년 내에 Step 1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대학원 첫 해의 겨울방학 기간인 2~3개월 동안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군 대체복무, 대학원 공부, 그리고 의사국가고시 준비라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차근차근 수행해 나갔습니다.
USMLE Step 1과 Step 2 필기시험은 전 세계 곳곳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치를 수 있으며, 서울에도 시험장이 있었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에 위치해 있어 KTX 서울역과도 가까워 지방에서 오는 수험생들에게도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현재는 위치가 변경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의사국가고시와 USMLE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험 방식에 있습니다. 의사국가고시는 모든 수험생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 장소에 모여 동일한 시험을 치르는 반면, USMLE는 수험생이 원하는 날짜를 선택하여 컴퓨터로 시험을 치릅니다.
한국에서 치르는 USMLE Step 1 시험은 하루에 약 10~12명만 응시할 수 있으며, 각 수험생마다 문제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 날짜도 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어, 원하는 날짜에 시험을 치르고 싶다면 미리 신청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별화된 시험 방식은 대한민국의 의사국가고시와는 확연히 다른 USMLE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망의 2019년 2월, 공부의 절대량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지만 대학원 겨울 방학 기간에 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했기에 날짜를 예약하고 시험장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긴장된 마음에 어떻게 시험장까지 왔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시험장 안의 공기는 아주 차분하면서도 다소 쌀쌀한 느낌이었습니다. 직원은 2명 정도 있었고, 소지품 검사를 매우 엄격하게 진행했습니다.
시험장에는 컴퓨터가 10여 대 이상 설치되어 있었으며, 화장실을 드나들 때마다 주머니와 안경 등을 세심하게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시험 문제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보안 절차였던 것 같습니다. 시험은 1세트당 40문제를 1시간 내에 풀어야 했고, 하루 동안 총 7세트를 치러야 했습니다. 오전에 입실해서 석양을 바라보며 귀가하는 긴 일정이었습니다.
특별히 많은 소지품을 챙기진 않았지만, 잘 외워지지 않는 부분들을 정리한 암기노트와 도시락, 그리고 에너지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에너지바를 준비했습니다. 편안한 복장과 신발을 착용했고, 그날 하루는 휴대폰 연락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느낀 것은, 오전에 들어가 해 질 녘에 나오니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진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험을 치르고 약 한 달 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떨어지겠어?' 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기에,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크게 좌절했습니다.
일과 중에는 병무청 판정의사 업무를 수행하고, 야간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나머지 시간을 전부 공부에 투자했기에, 보상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약 1년의 시간을 투자했는데, '나는 무엇을 얻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자문에 도달하기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결국 저는 의사로서 더 다양한 분야에 지식이 쌓인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공학대학원 공부와 병행하면서 한 학기를 더 보냈습니다. 대학원 2학기가 지난 뒤 방학 때인 2019년 8월에 재도전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또다시 낙방했습니다. 이때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는데, 낙방한 것은 저의 재능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부족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합격하는 것조차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포기할지 계속할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 공부가 정말 필요할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겸손한 자세로 공부에 임해, 대학원 3학기가 지난 뒤 겨울 방학 때인 2020년 2월에 세 번째로 시험에 도전했고, 드디어 Step 1을 합격했습니다. (사진 1) 정말 기쁜 마음으로 병무청 관사로 돌아와 맥주 한 잔을 마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동시에, 앞으로 이 힘든 과정을 또 반복하며 Step 2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공포를 느꼈습니다. '나는 이 병무청 군대체복무의 삶을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Step 2 필기시험 수험서를 구입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여름, 1차 시험 합격 후 2~3개월이 지나 저는 공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시점에 저는 공학대학원 석사 4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앞둔 상태였으며, 병무청 군 대체복무도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대체복무가 끝난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이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2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던 미국의사국가고시 공부는 1단계만 통과한 채 중단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험을 공부하면서 의사로서 필요한 지식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공의 생활 동안 기계적으로 수행했던 수많은 처방들이 어떤 과학적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USMLE 공부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저를 비교하면, 분명히 더 나은 의사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USMLE 시험은 미국 이민을 전제로 미국에서 다시 수련을 받는 것이 목적인데, 이미 한국에서 전공의 과정을 힘들게 마친 제가 다시 한번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공부를 시작하고 중단했다고 해서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그 시간은 의학적 지식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It's not about the destination, it's about the journey”
"미국 의사 면허 취득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의사로 성장한 것이 진정한 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