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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시, 첫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병역판정전담의사의 전국 도서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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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걸음: 편의점과 도서관 】


병역판정전담의사는 1년 만기복무 후 지역을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 선택은 연차 순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지방병무청 소속이면 가끔 타 지역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속했던 광주전남지방병무청은 1년에 약 3개월 정도 전북지방병무청으로 파견을 나갔었습니다. 근무지를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불편할 수 있었으나, 여러 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사를 하면 가장 먼저 지도에서 찾는 곳이 편의점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도서관입니다. 편의점은 생필품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했고, 그다음으로는 공부를 하고 책을 빌리기 위한 가까운 도서관이 중요했습니다. 제가 병무청 군대체복무 기간 동안 다녀보았던 도서관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 A. 첫 도서관 순례의 시작,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 】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제가 병역판정전담의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다녔던 도서관이라 애정이 큽니다. (사진 1) 지역주민 또는 지역근무자를 대상으로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의 특정 구역을 일반인에게도 개방해 주었기에 저는 제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근처에 다른 공공도서관도 있었지만, 대학도서관이 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공부가 더 잘 되었습니다.


1*cQl3MWE-RfrML6ZcjO5V3Q.png 사진 1. 2018년 발급된 조선대학교 도서관 이용증, 정형외과 전문의의 첫 도서관 여행의 시작



가장 좋았던 점은 주차와 식당이었습니다. 먼저, 대학 근처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일반적인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식당과 카페들이 많아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가격도 다른 번화가보다 저렴해서 좋았습니다. 대학 근처 식당들을 각각 다녀보며 어떤 식당이 맛있는지 저만의 비교분석도 해보기도 했습니다.


조선대학교 울타리 안에는 헌혈의 집도 있었습니다. 제가 제 고향이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헌혈을 해본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 헌혈을 하면서 문진을 하셨던 직원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냐고 여쭈어보셔서 저는 광주전남지방병무청 정형외과로 주소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관사 주소가 아직 외워지지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직원분께서는 그 말을 듣고 뭐 하시는 분이냐고 되물어 보셨습니다. 저는 정형외과 전문의이고 군 대체복무를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 친절하게 잘 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 몇 가지 기억이 더 있습니다. 가끔은 학생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학생식당은 더 올라가야 해서 정말 등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봄에 열리는 장미축제는 정말 구경할 만한 축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조잔디 축구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갑자기 뛰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축구장을 지나가면 늘 기분이 좋았습니다.



【 B. 녹색 숲과 쉼터, 대구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


제 고향 대구에서 전공의 시절 공부를 할 때는 늘 병원 당직실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도서관에 방문할 일이 자주 없었습니다. 그래서 USMLE Step 1 공부를 시작한 후에는 주말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새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집 근처에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열람실은 자리를 예약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일찍 오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바로 도서관으로 늘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이곳 근처에는 대학 시절 동기들과 한 번씩 식사하거나 회식을 하던 곳들이 있어서 추억을 떠올리며 다녔습니다.


근처에 큰 산림지대가 있어서, 눈이 피로할 때는 멀리 보이는 나무의 녹색을 보며 눈을 정화했습니다. (사진 2) 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눈의 수정체가 가까이 있는 사물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씩 멀리 보는 것도 해야 수정체의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주말에 고향에 와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aT0xpe0YA_AFEe9wALJGBQ.png 사진 2. 용학도서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푸른 산림, 피로한 눈의 휴식처가 되어준 녹색 풍경



【 C. 푸드트럭이 찾아오는 전주 삼천도서관 】


2018년 가을, 전북지방병무청에 근무를 시작한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전북대학교 도서관이었습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도 역시 지역주민 또는 지역근무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된 구역에 열람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차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에서 너무 멀었고, 외부인들을 위한 열람실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공공 도서관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전주시내의 다른 도서관들을 탐방 다녔고, 전주시립 삼천도서관이 저에게는 가장 최적이었습니다.


삼천도서관은 일단 주차가 쉬웠습니다. 열람실의 규모는 대학도서관에 비해 적었지만, 이용자 수도 비례해서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이곳은 전북지방병무청에서 같이 근무하던 이선호 전문의와 가끔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근처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커피집 '더리터'가 있어서 텀블러를 들고 커피를 받아 마시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식사는 근처에 '오선모 옛날김밥'집을 자주 갔습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의 특이한 점은 가끔씩 푸드트럭이 도서관 원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끔 간단한 음식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이 도서관의 매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서관 바로 앞에 삼천동 막걸리골목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제 고향 친구들도 이 거리를 알 만큼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전주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어서 고향 친구들이 이곳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두루뭉술하게 근처에 자주 간다고만 대답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매일 갔지만, 막걸리 먹으러 못 가봐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나중에 전주를 방문한다면 이곳에는 꼭 한 번 다시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 D. 아테네의 신전 같은 연세대 중앙도서관 】


2018년 9월에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에 입학한 후, 저는 대학원생 신분으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등록을 통해 얻은 특별한 혜택,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출입증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제가 살면서 본 도서관 중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아테네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테네에 있을 법한 신전 건물들처럼 건물이 정말 웅장했습니다. 또한, 책을 대여해주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와 전시의 기능도 하는 아주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다녀보았던 도서관들 중에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었습니다. 장점은 주위에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저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주위의 시각과 청각 자극에 쉽게 현혹된다면 이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백색소음에 무덤덤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맞은편에는 학생회관이 있는데, 이곳의 식당은 가격 대비 음식의 퀄리티가 아주 좋았습니다. 이곳에 파는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3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마치고 저와 같은 병무청에서 근무하던 고희병 전문의도 (현 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 본인의 수련병원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저와 함께 학생회관에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1*Vt7YHBK-S0GWv3u9NeFldA.png 사진 3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즐긴 소소한 행복, 공부 중 달콤한 휴식을 선사한 와플과 아이스크림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의 수업은 저녁 일과시간 이후(7PM)에 시작됩니다. 수업을 하나 또는 둘을 듣는 일정이었기에, 공강 시간이면 중앙도서관에 앉아서 USMLE 공부를 했습니다. 공학대학원 시험기간에는 이곳에서 공학대학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기간에 대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어느 순간 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보니 제가 이제 정말 서른 중반의 아저씨 대학원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도서관이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 수 있는 도서관이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시절, 수업이 전부 다 비대면으로 바뀌게 되어서, 저는 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등록금을 그대로 내고 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불만이 생겼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당시에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등록금을 일부 반환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 E. 정조대왕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선경도서관 】


2019년 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경인지방병무청으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근무지를 수도권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대학원에 통학을 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병무청 바로 근처에 수원시립 선경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근무지를 옮긴 첫날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경도서관을 여러 번 다니다가 도서관 경내에 어떤 흉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하여 읽어보니, 선경그룹 창업주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경그룹 (SK)에서 감사히도 이곳을 지어서 수원시에 기부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고향 대구에서는 기업이 기부를 통해 이런 공공시설을 지어주는 것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서, 이런 것이 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원시립 선경도서관은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정말 가까이 있었고, 이 도서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행궁 안에 위치하여서, 사실 관광지이기도 했습니다. 선경도서관 정문 바로 앞에 여러 식당들이 있었고, 이곳들을 판정의사 친구들과 함께 많이 다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선경도서관 바로 앞에 일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이 나중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아버지의 김밥집 촬영지였다고 합니다. 일 끝나고 편하게 자주 방문하던 그 식당이 그런 곳으로 쓰였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 또한 대구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이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는 정조대왕에 관한 여러 전시물들도 있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행차를 하실 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이렇게 수십 척의 배를 횡으로 붙여서 간이다리를 만들어서 건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강을 어떻게 건널까 생각해 보면 그냥 생각해 보기로는 배 타고 건넜을 것 같은데, 왕의 행차는 특별해 보였습니다. (사진 4)


1*nkoP-1j0AF1Q7fburrYU8Q.png 사진 4. 선경도서관에 전시된 정조대왕의 한강 나룻배 다리, 조선시대 왕의 특별한 행차를 담은 그림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즈음에, 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도 휴관을 했습니다. 전례 없던 감염병의 유행 시기에, 어디서 공부를 해야 하나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병무청 3년간의 군 대체복무 기간 중에 2년을 수원에 있었는데, 내부공사와 코로나 등으로 자주 이용하지 못했어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사진 5) 수원에 2년 동안 살면서 선경도서관과 팔달산의 산책길은 제 마음에 안식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후에 수원을 떠나서도 이곳이 한 번씩 기억이 나고, 그립기도 합니다.


1*RPnw-jZU3zYWacaRS-U82A.png 사진 5. 코로나19로 인한 수원시 공공도서관 휴관 안내문, 도서관 순례의 아쉬운 마침표



"A library is a hospital for the mind."

"도서관은 낯선 도시에서 지친 마음의 안식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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