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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사 면허 도전기: 공부의 바다에서

3년간의 약속, 두 번째 이야기: 수험생으로 돌아가다

by 의사과학자 류박사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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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 미국의사 면허 도전기: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


본격적으로 USMLE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정말 제가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취침하기 전까지 시험 생각뿐이었습니다. 시험은 언제 볼 예정인지, 오늘은 어느 정도의 공부량을 채울지를 늘 고민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보통 수험서는 3회 정독(3독)을 해야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어느 시점까지는 1독을 끝내고 시험 직전까지 3독을 완료하는 이런 계획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험생의 장기계획단기계획이 늘 예상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장기계획에 문제가 발생하여 시험 날짜를 뒤로 미룬 적도 있었고, 매일 할당량을 모두 채우지 못해 단기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제 공부를 하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일화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복잡한 의학지식 단순화: 초고속 암기비법 】


생화학 공부는 복잡한 여러 물질들의 대사과정을 암기하면서 그 과정 중간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질병들을 함께 익히는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의학 공부와 이학 공부(화학과)는 접근 방향이 확연히 다릅니다. 의학 공부에서는 대사과정의 화학식들을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고, 오로지 대사물들의 이름과 관련 질병을 순서에 맞게 외우면 됩니다. 반면 이학 공부는 화학식들을 통해 물질 자체의 특성에 집중하는 학문입니다.


문득 의학과 1학년 시절 이 학문을 공부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화학을 공부하며 물질의 대사과정과 화학식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공부라면 기초부터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죠. 그러나 의과대학의 생화학적 지식은 화학구조식을 자세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사과정의 전체 개요 정도만 익히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이 처음 의과대학 공부를 시작할 때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페닐알라닌(Phenylalanine)과 타이로신(Tyrosine) 대사과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대사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1)


Phenylalanine(페닐알라닌) → Tyrosine(타이로신) → Homogentisic acid(호모겐틴산) → Metylacetoacetic acid(메틸아세토아세트산) → Fumarate(푸마르산염) → TCA cycle


이 과정에서 Homogentisic acid에서 Metylacetoacetic acid로의 대사가 중요합니다. Homogentisate oxidase라는 효소의 기능 이상이 발생하면 정상적인 대사가 진행되지 못합니다. 그 결과 Alkaptouria(알캅톤뇨증)라는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알캅톤뇨증의 주요 증상은 피부가 검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 대사과정에서 의사가 알아야 할 지식은 화학 구조식이 아니라 정확한 순서와 이름입니다. 공부할 때 앞글자를 따서 암기한다면 "페 → 타이 → 호 → 메아 → 푸 → TCA" 이렇게 외우면 됩니다. 추가적으로 "Homogentisate oxidase, Alkaptouria, 검은색 피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묶어 "호, 알, 검"이라고 암기하면 이 대사과정에서 시험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습득한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머릿속에 "페, 타이, 호, 메아, 푸"와 "호, 알, 검"만 남아있어도 전체 과정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만의 암기법을 수천 개 만들어내야 USMLE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1. 타이로신 대사경로 마스터하기: '페→타이→호→메아→푸→TCA' 첫 글자 암기법으로 복잡한 생화학을 단순화!



【 의학공부의 진실: 과학 탐구가 아닌 효율적 암기 】


생화학 공부는 '화학'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화학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의사국가고시 시험은 실제로 화학 공부가 아니라, 물질들의 이름과 전후관계를 정확하게 암기하면 풀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는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연상 단어들만 외워도 문제를 맞힐 수 있는 공부였습니다. 만약 수험생이 중간 과정에서 화학적 작용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면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그 수험생은 손에 꼽히는 천재이거나, 높은 확률로 낙제를 하게 될 것입니다. 높은 확률로는 후자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는 의사들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진료할 때, 어떤 병에 어떤 치료약을 써야 한다는 지식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과학적 기전으로 이 병이 발생하는지는 알면 좋지만, 몰라도 치료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지식입니다. 과학적 기전을 연구하는 의사를 의사과학자라고 합니다. 모든 의사가 의사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저로서는 이 공부가 너무 고되었습니다. 대사과정을 공부하다가 심인성 빈맥 증상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머리는 암기할 공간이 없는데, 신체는 계속해서 더 많은 지식을 주입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갑자기 맥박이 급격히 상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공부는 이렇게 육체적으로도 부담이 큰 고된 과정이었습니다.



【 전문의도 당황한 USMLE: 예상 밖의 난이도 】


한 번은 근골격학 분야의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별도로 공부하지 않고 바로 실전 문제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 면허가 있는 저로서는 이 정도 문제는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5문제 중 1문제를 틀리고 말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틀린 문제가 단순히 헷갈려서 틀린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틀린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당혹스러웠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 시험공부를 할 때 분명히 보았던 내용이긴 했지만,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해 깊이 공부하지 않았던 내용이 USMLE Step 1 시험 모의고사에 출제된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어렵게 나온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공부는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 1분 30초의 시간전쟁: 비원어민의 도전 】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외국에는 여행으로 단기 체류한 경험만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토종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USMLE 공부가 고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의학 공부를 하다 보면 모든 용어들이 영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의학영어 단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 보니 40문제를 60분 만에 풀어야 해서 1문제당 약 1분 30초 안에 해결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본문 길이가 너무 길어서 읽는 데만 1분 이상씩 걸리곤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때로는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은 공부를 좀 더 수월하게 하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든 국제학술대회에서도 당연히 영어가 공용어입니다. 이런 현실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이렇게 두 배의 노력으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복잡한 의학지식, 단순화가 최고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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