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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사 면허 도전기: 3년의 약속

병역판정전담의사에서 글로벌 의사로의 여정

by 의사과학자 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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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MLE 도전의 시작 】


병무청에서 병역판정전담의사로 군대체복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미국의사국가고시(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 USMLE) 공부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공부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한국 의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USMLEKOREA'라는 사이트에서 정보를 탐색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상에 이런 커뮤니티가 있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느낌은 USMLE 공부를 계획하고 실제 시작해 보는 군의관, 공보의, 병역판정전담의사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남긴 공통적인 조언은 그냥 재미로 시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취미로 공부한다는 느낌으로는 이 시험에 합격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공부해야 하는 양이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읽고 제가 다짐한 것은, 이 좋은 시절에 인생의 여유를 즐기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다면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취미로 하지 않을 것이며,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저에게 주어진 제한시간은 3년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훈련소 훈련기간을 제외한 군대체복무 기간이 3년이기 때문입니다.



【 미국 의사의 관문: ECFMG 】


USMLE를 주관하는 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ECFMG)는 미국에서 진료를 원하거나 미국 의과대학에 지원하려는 미국 외 의사 및 미국 외 의과대학 졸업생을 위한 공인 자격 평가 및 지도 기관입니다. 이 기관에서 미국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부여합니다.


이를 위해 총 3번의 시험에 통과해야 합니다. Step 1과 Step 2 CK(Clinical Knowledge, 필기시험), Step 2 CS(Clinical Skill, 실기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Step 1은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과정으로 보자면 의예과 기간의 기초의학과 의학과 1학년까지의 기초 임상의학 교육과정을 포함합니다. 정말로 방대한 양이었습니다. Step 2는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으로 나누어지는데, 필기시험은 완전히 임상적인 부분을 다루고, 실기시험은 미국에 직접 가서 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 능력을 평가받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ECFMG 자격증을 따는 것을 3년간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 정형외과 의사의 USMLE 여정 】


USMLE 공부는 제가 의과대학 시절에 공부했던 의학적 지식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두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저는 원어민이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영어 문장을 읽는 속도가 원어민에 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어로 된 문제 설명 글이 정말 길었기 때문에 문제를 읽고 이게 어떤 의학적 질문인지를 한글로 생각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런 과정을 제한된 시간 내에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둘째, 저는 이 공부를 시작한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또 다른 불리한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정형외과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 정형외과 외의 다른 의학 지식들을 많이 잊어버리기도 하였습니다.


USMLE Step 1의 과목은 기초의학(생화학 Biochemistry, 면역학 Immunology, 미생물학 Microbiology, 병리학 Pathology, 약리학 Pharmacology, 공중보건 Public Health)과 임상의학(심혈관 Cardiovascular, 내분비 Endocrine, 소화기 Gastrointestinal, 혈액종양 Hematology-Oncology, 근골격 Musculoskeletal, 신경 Neurology, 정신 Psychiatry, 신장 Renal, 생식 Reproductive, 호흡 Respiratory) 이렇게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꺼운 700여 페이지의 수험서 중에서 제가 자신 있는 부분은 약 49여 페이지에 해당하는 근골격학이었습니다. (사진 1) 이 부분 외에는 전부 새롭게 공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기초의학 부분은 20대 초반에 공부한 기억만 머릿속에 있었지, 완전히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쳐봤다고 해서 그 지식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lfUBVUdMY6A3kOPVVNw3yw.png 사진 1. USMLE Step 1 필수 교재: 바이블로 불리는 First Aid 수험서



【 하루하루의 공부 전략】


공부의 시작은 먼저 인터넷 강좌를 수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이 의사 중에 소수이긴 하지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유료 강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루에 공부할 분량을 정해놓고 그 할당량을 채우려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이 밤 10시에 자는 일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공부가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분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살아가는 데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으면서도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 정신의 압박, 심장의 반란 】


공부를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 중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 있습니다. 살면서 정신과 신체가 갈등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이 제 몸에 이상 증상을 만들어 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USMLE Step 1의 과목 중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생화학 과목을 공부할 때 저는 강력한 심인성 심계항진(psychogenic palpitation)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정신은 특정 시간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고 공부를 하여 할당량을 채우리라는 압박을 스스로 주고 있었는데, 저의 신체는 이 공부가 정말 하기 싫어서 잠시 일어나 도서관 주위 한 바퀴를 산책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했습니다. 눈을 꽉 감고 공부를 더 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면서 맥박이 분당 120회 이상 올랐습니다. 더 이상 앉아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껴서 즉시 눈을 감고 엎드려 심장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꼭 의사로 생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닌데, 이 공부를 꼭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3년이라는 군대체복무 기간 동안만이라도 교양 공부하는 느낌으로라도 공부를 해보자고 제 자신을 다독이고 채찍질하였습니다. 의사로서 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When you draw the sword, throw away the scabbard”

“도전을 시작했다면 후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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