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역판정전담의사의 슬기로운 도서관 생활

바쁜 전공의에서 배움에 목마른 학생으로

#병역판정전담의사 #판정의사 #USMLE준비 #공학대학원 #의사유학 #일과공부병행 #도서관공부 #자기계발 #시간관리 #의대졸업후진로 #군복무활용법 #평일루틴 #주말공부 #텀블러라이프 #천원커피 #슬기로운병무청생활 #조선대학교 #조선대학교도서관 #까페점보 #수성구립용학도서관



【 시간의 자유를 얻다 】


전공의 수련 시절에는 개인이 시간계획을 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근로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와는 상관없이, 대체로 오전 6~7시부터 오후 8~10시까지가 일과 시간이었습니다. 그 외에 당직 시간에는 심야까지도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저 년차 때는 3일에 1번씩 당직을 섰습니다. 개인 자유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제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여 병무청에서 병역판정전담의사로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제 의지대로 시간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전 근무시간 전과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의 시간을 제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그 해 가을부터 공학대학원 2학기에 입학하겠다고 계획했고, 대학원 입학 전과 입학 후에 병행할 수 있는 또 다른 배움의 기회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 두 가지 배움의 길 】


저는 결국 미국의사국가고시(USMLE) 공부를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저의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의사로서 일할 수 있는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정형외과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 근골격 관련 지식에만 집중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의학 지식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하여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형외과와 컴퓨터공학을 접목시킬 다른 대학원에 입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컴퓨터 관련 공부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이미 '머신러닝'이 많이 발전하여 대중화되어 있었기에, 대학원 입학 전에 기본 개념이라도 습득해야겠다고 계획했습니다.



【 도서관: 나의 오랜 쉼터이자 배움의 공간 】


저는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등의 생산적인 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신문을 보며 영화도 감상하는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곤 했습니다.


공공도서관은 시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반면, 대학도서관은 제한적인 이용 권한을 부여합니다. 저는 광주전남지방병무청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기간 내 일반 이용증을 발급받아 조선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훈련소가 선물한 슬기로운 학생의 일상 】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퇴소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라 저의 하루 일과는 오후 10시 취침과 오전 6시 기상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 건강한 생활 리듬을 지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전공의 시절에는 집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식사를 먹거나 병원에서 아침밥을 먹었지만, 이제는 마트에서 사 온 시리얼과 우유로 약 15분간 아침을 해결하고 샤워를 한 후 조선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사진 1)


도서관에는 대체로 7시 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층에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유석이 있었고, 2층에는 좌석 예약이 필요한 지정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좌석을 예약하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왕래하는 1층 자유석을 점차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성향 차이이기도 한데, 완전히 조용한 곳에서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약간의 백색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집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상황에 따라 선호 좌석이 달라서,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 도서관에서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어느덧 나이 서른 중반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대학에서 학생의 마음으로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잔잔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늘 조용조용하게 다니려고 노력했고, 무소음 마우스를 사용했으며, 키보드 작업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1*eQ_YtXb_9v96oh94J6LG8A.png 사진 1.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판정의사에서 학생으로.



【 천 원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텀블러의 추억 】


저녁에 병역판정전담의사 업무가 끝나면 즉시 조선대학교 앞으로 와서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도서관 열람실로 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오고 가는 도중에 커피는 필수였습니다. 대학 후문 바로 앞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천 원에 파는 '카페점보'라는 곳이 있었고, 하루에 2잔 이상씩 늘 마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항상 1회용 잔에 커피를 담아가다가 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텀블러 애용자가 되었고, 주위 판정의사들에게도 텀블러 사용을 많이 독려하게 되었습니다. 카페 사장님과도 친해져서 광주전남지방병무청 근무의 마지막 날에는 떠나게 된다는 편지를 썼고 답장도 받았습니다. 하는 일과 학업 모두 잘 풀리길 바란다는 따뜻한 덕담이었습니다.



【 두 가지 목표를 향한 3년의 여정 】


이런 생활과 함께 가을에 대학원 입학하기 전까지는 USMLE 공부와 중간중간에 공학 공부에 모든 시간을 쏟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학기부터는 공학대학원 통학을 하면서, 수업이 없는 날과 주말에 USMLE 공부를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주말에는 병무청 동기들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저도 금요일 저녁에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대구에서도 식사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집 근처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보냈습니다.


시작을 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기에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3년간의 군 복무 기간 동안 저는 USMLE 공부와 공학학위 과정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공부에만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도 많지 않습니다. 3년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The best time to plant a tree was 20 years ago. The second best time is now”

“가장 좋은 공부의 시작은 학창 시절이었지만, 두 번째로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 판정의사가 된 이 순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