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에서 시작한 나의 독서일기
40대 초반의 S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남편 K와는 같은 직장을 다니고, 올해 11살이 된 딸 아이가 하나 있다. S는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한 여름에도 셔츠 단추를 끝까지 다 채우는 답답함이 익숙한 사람이다. 정해진 루틴이 편한 그녀에게 바쁜 일상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인지도 모른다.
S의 동네는 여러 아파트 단지를 벚꽃길이 둘러안고 있어 어스름이 내린 저녁에도 초록빛 바람을 느낄 수 있다. 2017년 여름 어느 주말 저녁, 가족과 손을 잡고 동네 공원길을 산책하던 S는 오픈을 준비중인 작은 가게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분주하게 책을 정리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가게 앞에 세워둘 현판에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2층 나무 벙커로 꽉 찬 작은 책방은 동화 속 오두막집 같았다. 퇴근길에 동네서점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는 서울사람들의 신문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던 S는 골목길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 책방이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그리고 가을의 색을 만난 어느 일요일, 어서 들어와 나를 데려가라고 손짓하듯 활짝 열린 책방의 문턱을 S는 용기내어 조심스레 넘었다.
일상의 변화를 즐기지 않는 그녀에게 동네 책방은 분명 낯설고 새로운 공간이었다. 익숙함 속에서 잠시 시간을 멈추고 또 다른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S는 책방의 문을 열고 또 열었다. 따뜻한 조명의 작은 책방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으로 마음의 편안한 휴식을 선물해주었고, 책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선 일로 복잡한 생각들이 멈추고, 마치 책장 속으로 여행을 들어가는 것 같았다. 2018년 봄, 책방에서는 매주 책을 읽고 독서일기를 쓰는 <독서일기 Club>에 참여할 멤버를 모집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으나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에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려웠다. 신청자 접수 마지막 날 그저 책방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독서일기 Club 모집에 번쩍 손을 들었다.
언젠가 드라마를 보다가, 조용한 시골 집 단출한 방에 커다란 창을 마주하고 앉아 글을 쓰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 그녀였다. 과연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가능할까라는 걱정과 망설임으로 시작한 그녀의 독서일기는 그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맞았다. 책을 사고,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S,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걱정은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오롯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벌써 2년, 독서일기는 그녀에게 일상이 되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낀 시간만큼 S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책을 통해 다른 책을 만나고, 독서일기에서 만난 그녀들과 유쾌한 책 이야기를 나눈다. 독서일기는 그녀에게 쉼표이고, 느낌표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쓸까 생각하고, 사각사각 연필로, 타닥타닥 노트북으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까만 글씨로 하얀 종이를 채우고, 그 만큼을 마음에서 비워낸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내면,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손꼽아 기다리는 금요일 저녁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스름이 조용히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 데이트하러 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좋아하는 그녀들이 웃으면서 책방의 문을 연다.
같은 공간, 같은 일, 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매일의 일상을 살아온 S, 책과 글쓰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은 그녀에게 살아있음을 선물한다. 행복한 자신을 위해 바른 삶을 살고 싶은 그녀에게 책은 좋은 친구가 되었고, 독서일기는 또 다른 그녀가 되었다. 오늘도 S는 자신과 누군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바쁜 시간 안에서 책을 펼친다. 그리고 오늘도 독서일기를 쓴다.
2020.05.04. 일상을 여행하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