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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May 27. 2020

[독서일기] 소소동경, 하루하루 교토

여행 안에서 가져보는 일상의 설렘

“멋진 여행의, 옳은 여행의 기준과 답은 없다. 그저 내가 행복했으면 됐고, 생각했던 일을 현실로 이루었으면 된 거다." <하루하루 교토> 250p


뜨거운 여름, 가을 날 산책 같은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소소 동경>, <하루하루 교토>, 소박한 제목만큼이나 글과 사진이 꽤나 담백해서 편안하고 따뜻하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시간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소 동경의 작가는 4년을 동경에서 살았고, 하루하루 교토의 작가는 한달 살이를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고, 듣는 시간은 부러움과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한다. 동경과 교토의 이야기도 그랬다. 바쁜 일상에 지쳐있는 나에게 그저 부럽고 행복한 상상을 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해가 질 때쯤,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황금빛으로 곱게 물든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동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일상에 지쳐 구깃해진 마음도 활짝 펴진다. 바쁜 도심 생활에서 벗어나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곳, 야네센에서 보내는 한나절은 그래서 소중하다." <소소 동경> 83p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본다. 그래, 나에게도 소소 동경의 작가처럼 외국 생활의 시간이 있었다. 여행자가 아닌 오롯이 일상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나는 중국어를 전공한 덕분에 2000년부터 2002년에 걸쳐 2년의 시간을 중국 강서성(江西省) 성도(省都)인 남창(南昌)시에서 유학을 했다. 그렇게 다른 나라 문화 속에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과 함께 살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어만 들리더니,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낯선 이방인의 시간이 생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많지 않은 도시여서 나와 친구들은 중국 친구들에게 호기심 천국이었고, 나는 다양한 중국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자격증 시험에 목매지 않고, 중국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멋진 환경에서 살아보게 되었다.


중국은 큰 대륙답게 많은 민족(56개), 많은 언어(방언),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고작 2년의 시간이었지만, 대륙의 크기는 책상에 앉아 지도 한 장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지만, 역시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니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방학이면 친구들과 궁금한 중국의 도시들을 발로 여행하면서 새로운 중국을 만났다. 중국에서의 생활과 여행,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만큼 그들의 생활을 더 깊숙이 보게 했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도쿄에서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작가처럼, 나에게도 그런 중국에서의 일상의 추억들이 많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은 분명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때 만난 중국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내 짝궁 미국 친구도 어떻게 지내나 문득 문득 궁금해진다.


"여행 그리고 낯선 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 게다가 교토라는 조미료가 뿌려져 완성된 이 모든 리스트는 내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쉬어 가는 여행에서 내게는 나름의 할 일이기도 했고, 매일 밤마다 오늘 이룬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학교 다닐 적 스터디 플래너에 적어둔 오늘의 공부를 끝냈을 때 뿌듯해하며 체크하던 어린 날의 나처럼." <하루하루 교토> 114p


나는 경주를 좋아한다. 하루하루 교토를 읽으면서 경주가 떠올라서 궁금해졌다. 책에서는 교토의 관광지가 아닌 교토에서 한달 동안 먹고 마시며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기라기 보다는 일기에 가깝고, 매일 매일 다닌 식당과 카페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나라, 낯선 도시에서 혼자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참 부러웠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것은 내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느낌이었으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느리지만 여유롭게 자전거와 전차를 타고 다니며 관광지가 아닌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보고, 별 다방이 아닌 동네 작은 카페에서 향이 좋은 커피를 마주하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휴식 같은 시간을 상상해본다. 짧은 여행에서는 좀처럼 누려보기 어려운 사치인지도 모르지만, 하루쯤 그런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책은 천천히 여유를 부려보는 일상의 산책 같은 여행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바람과 햇살이 좋은 어느 날, 오래된 도시 교토의 골목을 천천히 산책해보고 싶어졌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블로그에 소개되는 유명한 곳을 가지 않아도, 검색창에서 맛집 검색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작은 도시, 작은 골목을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며 눈과 마음이 여유로운 그런 여행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졌다. 그런 소소한 매력이 분명 교토에 숨어있을 것만 같아 조만간 숨은 그림 찾기 신공을 발휘해보리라 다짐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시간을, 그리고 외국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나 역시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일본 여행에세이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했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었다. 일상의 삶 속에서도 여행의 시간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연을 마주하고, 바람을 느끼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열렬히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 나의 에너지를 다시 끄집어내본다. 오늘도 이 마음 다해 살아오느라 애썼다고 토닥토닥 해 본다. 


2018.08.17. 일상을 여행하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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