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알면 삶이 풍성해진다.
경쾌한 실로폰 두드림이 어울리는 도레미송! 잘츠부르크의 넓은 초원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노래하는 아이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면서, 내가 기억하는 오스트리아의 멋진 장면이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동네 책방에서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모차르트의 일생에 관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어렵게만 생각했던 클래식 작곡가의 삶은 꽤나 흥미로웠다. 다른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오스트리아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는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가 넘쳐났지만 오스트리아를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박종호 작가가 쓴 <잘츠부르크>,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를 만났다.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제목만 봐도 설렌다. 책을 읽고 나면 내 인생도 아름다워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나는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설렘 가득 안고 책을 읽고 싶었지만, 여행을 미루게 되면서 결국 멋진 책으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클래식 음반 가게를 운영하고, 아카데미에서 음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칼럼을 쓰고, 책을 쓰는 작가로 활동한다. 책은 빈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빈의 카페 문화를 소개한다. 여러 차례 오스트리아 방문을 거듭하며 책을 썼다는 작가는 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처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마주하고 음악을 들었으며, 추석에 성묘 가듯이 잠든 음악가들을 찾았다고 한다.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고, 책을 읽다 보면 취미 생활을 넘어선 그의 전문성의 깊이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렇게 빈의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카페와 거리에서 작가는 예술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예술가들의 정신을 알아가고, 사색하며 행복한 내공을 쌓은 것 같다. 직접 예술이 시작되고 발전한 그 곳으로 가서 동경하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녔기에 그의 예술적 소양은 살아 숨쉰다. 나도 작가의 발자취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책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문화여행자라는 그의 타이틀이 새삼 부러워진다.
“그것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빈에서는 빈의 정신이 만든 것들을 음미해야 한다. 정신의 덩어리를 보면서, 만지면서, 들으면서… 그것들, 정신의 덩어리들은 여행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두 발로 찾아가 그것들을 만나야 한다. 예술은 모두 자기 자리가 있다. 빈의 것은 빈에서 보아야 한다.” 19p
빈은 다양한 예술이 발전한 도시이다. 빈의 예술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여인, 알마 말러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예술계의 프리마돈나로 불리는 그녀는 세기말 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이다. 알마의 아버지는 유럽 풍경화의 대가 알마 쉰들러, 새 아버지는 아버지의 제자 카를 몰, 화가인 아버지의 살롱에는 항상 많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고, 알마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했다고 한다. 예술에 대한 그녀의 풍부한 식견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큰 매력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알마가 예술사에 있어 중요한 여인으로 지목되는 건 바로 많은 예술가들과 그녀의 화려한 연애 덕분이다. 그 중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화가 코코슈카, 작가 프란츠 베르펠에게 그녀는 특별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직접 예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살았던 네 남자는 각기 음악, 건축, 미술, 문학계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그녀의 끊임없는 연애로 예술의 대가들은 기쁨과 슬픔의 롤러코스터를 느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자신을 가두었겠지만, 그래서 좋은 작품들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연애가 예술사에 기여한 공은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음악만 보아서는 음악이 다 보이지 않고, 미술만 보아서는 미술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곳이 빈이다. 음악을 잘 보려면 미술을 알아야 하고,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또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한꺼번에 건축과 음악과 문학과 미술을 누리는 풍요로운 경험에 몸을 떨게 될 것이다. 그곳이 빈이다. “ 25p
빈에는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루돌프 레오폴트 박사가 평생 모은 5천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 레오폴트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관의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 미술관이고,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품 소장으로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평가 받고 있다. 레오폴트 박물관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흑백 대형 그림들이 가득히 걸려있는 전시실이다. 전시실에는 둥근 소파가 놓여있고, 소파 뒤에는 헤드폰이 걸려있는데, 헤드폰을 쓰면 말러의 교향곡 6번 연주가 나온다고 한다. 클림트의 벽화를 보면서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미술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앙상블인가. 작가는 ‘클림트의 그림과 말러의 음악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표현한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예술이 궁금해진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는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과 예술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곳이다. 책으로 만난 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수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의 산실로 불리는 거리의 카페들, 시간을 두고 봐도 봐도 모자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책이나 교실이 아닌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보고, 미술관 한 켠에 등을 대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화가의 그림 앞에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정해진 수업이 아닌 재미있는 놀이, 상상만해도 즐겁다.
동서 유럽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서유럽과 동유럽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고, 그런 전통과 예술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을 다름이 아닌 어울림으로 만날 수 있는 도시 빈,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오스트리아의 도시 빈을 마음으로 상상해본다. 산책하듯이 작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만나고, 미술관에 들러 클림트와 말러의 앙상블에 취하고, 진한 커피 향을 따라 거리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 마치 그곳에 사는 사람인 양 신문을 펼쳐두고 멜랑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공연장을 찾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분명 빈이 궁금해서 책을 펼쳤지만, 책을 덮은 지금, 예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빈의 예술을 만나기 전에 모차르트, 베토벤, 클림트와 말러를 먼저 만나야겠다.
“빈은 예술의 절정을 알려주었고, 예술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일깨웠다!”
2018.08.31. 일상을 여행하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