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Good! 잘츠캄머굿
S의 직장에서는 매년 가장 뜨거운 여름 1주일간의 하계 휴가를 떠난다. 그런 S의 남편은 매년 여름휴가가 끝날 즈음이면, 다음 해 여름휴가 계획을 물어온다. 그러고 보니 S의 가족은 매년 함께 여행을 떠났다. 2019년 여름, S는 체코와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1년 전부터 프란츠카프카의 <변신>을 시작으로,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잘츠부르크>까지 여행지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책으로 만난 오스트리아는 책 제목처럼 여행만 다녀와도 인생이 아름다워질 것 같았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S, 신기하게도 낯선 여행지에서 뛰어난 전투 영어 실력을 발휘한다. 영어를 못해도 질문을 무척이나 잘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을 잘 들어내는 능력자다. 중국에서 2년 간 생활하며 중국어를 공부했던 S에게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건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언어의 존재 목적인 의사소통에만 의미를 둔다. 영어도 못하는 S는 그렇게 매년 고생스럽게 가족여행의 가이드가 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Excuse Me”를 외친다. “엄마는 여행가서 Excuse Me 랑 This One~ This One~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라는 아이의 말에 “오~ 관찰 능력이 뛰어난데~” 라고 말하고는 웃음이 빵 터진다. 그래 다음에는 우리도 짠내투어처럼 하루씩 돌아가면서 가이드 해보자.
# Good? 잘츠캄머굿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했던 곳은 잘츠캄머굿에서의 2박 3일이었다. 그림 같은 사진을 많이 봤고, 환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눈의 앵글로 직접 담아보는 그 풍경이 몹시 궁금했다. 매번 가족과의 해외 여행에서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왔던 S는 잘츠캄머굿을 더 속속들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특별히 차량을 렌트하기로 했다. 프라하에서 장거리 버스로 5시간 30분을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 다시 30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잘츠부르크 시내로 이동, 차량을 렌트해서 잘츠캄머굿으로 가는 긴 여정은 유럽에서의 첫 렌트 여행이 살짝 후회되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하는 수동 차량 운전에 긴장을 했고, 낯선 나라의 신호 체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바빴다. 물론 핸들을 잡고 질문을 한들 조수석에 앉은 S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침묵뿐이다. 좌회전 신호에서 뒤에 오는 차량이 빵! 하면 신호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기다려주면 신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의존해서 운전을 하는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휴대폰 거치대, 세상에 송풍기가 세로형이다. 세로형 송풍기에 꽂아둔 휴대폰 거치대는 좌우로 춤을 추었고, S는 친절한 구글맵 언니가 춤을 추지 못하도록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렇게 잘츠부르크 시내를 겨우 벗어나 조용한 잘츠캄머굿으로 가는 길로 한참을 들어선 후에야 부부 앞에 펼쳐진 잘츠캄머굿의 풍경화가 눈에 보였고, 팽팽했던 긴장의 끈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 Good! 잘츠캄머굿
잘츠캄머굿은 잘츠부르크 동쪽으로 펼쳐진 자연경관 지구이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시골 풍경이 떠오르는 곳이다. 과연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커다란 초록빛 그림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큰 폭의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눈으로 사진을 찍듯이 천천히 둘러본다. 마음속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풍경들이 괜히 렌트해서 고생한다고 생각한 시간들을 보상해 주는 것 같다. 저 멀리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흰색의 높은 산봉우리는 만년설의 느낌을 주고, 그 앞에 펼쳐진 커다란 초록빛 자연의 소리가 마음의 고요함을 가져다 준다. 산악열차를 타고 천천히 오르는 샤프베르크 정상은 스위스의 산악열차를 타고 올랐던 융프라우를 기억하게 했다. 하얀 눈으로 가득했던 융프라우와 달리 샤프베르크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아터제와 몬트제를 만날 수 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하늘에 가까워지는 느낌과 아래로 내려다보는 호수가 가진 물빛의 조화는 내가 이곳에 와 있음에 감사하게 한다. 잘츠캄머굿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고,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마음은 조금 더 조용히, 조금 더 멀리 걸으면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싶지만, 이미 충분히 힘든 여행의 중반에서 S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 본다. 예쁜 엽서에서나 봄직한 풍경이 눈 앞을 떠나지 않는데, 사진의 앵글 안에 그 눈부신 모습을 다 담아낼 수가 없어 못내 아쉽다. 그래도 그림처럼 잘 그려진 자연의 모습에 귀 기울이고, 두 팔을 크게 벌려 초록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이 고맙고 행복하다. 잘츠캄머굿, Very Good! 이다.
# 여행의 시간
“예술의 가치는 겉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올바른 정신성에 있다. 그것을 잊지 말자고, 결코 잃지 말자고 그들은 100년 동안 한결같이 이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38p
박종호 작가의 책에서는 유럽이 문화와 예술이 가장 발달한 보고(寶庫)라고 이야기한다. 잘츠부르크 여행에 앞서 책 <잘츠부르크>는 얼른 떠나라고, 꼭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등을 떠밀어 주었다. 잘츠부르크가 축제의 도시이며, 매년 여름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유럽의 3대 음악축제로 꼽힌다는 것, 100년 동안 이어진 그 축제의 시작은 늘 연극 <예더만>이라는 것(예더만은 모든 사람이라는 뜻이며,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된 예더만이 예기치 못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인생의 심판을 받게 된다), 덕분에 계절에 관계없이 다양한 음악 축제들이 열리는 도시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S는 분명 책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 어떤 여행보다 설레임을 안고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에 잘츠부르크를 방문했지만 대성당 앞 예더만 동상만 보고 다음 코스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고, 소금도시 잘츠캄머굿은 넓은 지역이었지만, 렌트를 하고도 많이 둘러보지 못했다. 공연의 도시에서 공연 한 편 보지 못했고,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해볼 여유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여행은 늘 그렇게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 소통에 대한 답답함과 시간과 체력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S는 체코 프라하에서부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비엔나로 이어진 여행을 잘츠캄머굿의 눈부신 초록빛으로 기억해본다. 여행의 시간과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나만의 테마를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그 여행을 만들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다시 일상으로 시계 바늘을 돌려놓는다.
2019.08.16. 일상을 여행하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