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일기의 매력
시베리아 횡단 열차, 그리고 바이칼, 분명 가족 여행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어떠한 도전도 두렵지 않은 파이팅 넘치는 청춘들에게 어울릴만한, 그렇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지 않을 만한, 적당히 고생스럽고, 적당히 궁금한 그런 곳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그리고 어쩌면 각자가 가진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여행의 모습이지 않을까. 왠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새벽에 잠시 눈을 떴는데 여전히 열차는 말없이 달리고 있다.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3박 4일간의 기차 여행, 지루하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더운 공기의 시베리아 평원을 마주하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20년 전 중국에서의 기차 여행을 떠올렸다. 중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방학이면 중국을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 친구들과 여행을 했었다. 그 첫 여행은 내가 살던 도시 남창(南昌)에서 중국의 수도 북경(北京)으로, 북경에서 병마용의 도시 서안(西安)으로, 서안에서 다시 남창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중국에서의 여행은 대부분 저녁에 기차를 타면 다음 날 아침에 이동하는 도시에 도착하는 1박 2일의 이동 시간을 필요로 했기에 침대 기차를 이용하는 불편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중국 여행에서 나는 의도하지 않게 2박 3일, 26시간의 기차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서안에서 남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특급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보통열차를 타게 되었는데, 기차를 타기 전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에어컨이 없는 열차임에 절망, 24시간이면 도착하는 줄 알았던 기차가 하염없이 달리기만 해서 알고 보니 36시간이나 걸리는 열차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절망, 에어컨이 없는 기차를 탄 덕분에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조차 무척이나 더웠고, 겨우 고양이 세수 밖에 할 수 없고,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배를 채워야 했던, 사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불편해할 아이들보다 당장 나부터 걱정이다. 새로운 경험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는 항상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누가 봐도 고생스러운 여정이지만, 가족과 함께 보낸 고생스러웠던 그 시간이 오히려 각자에게 더 오래 기억될 것임을 알기에 나도 감히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가족여행의 모습이다. 책 <인생에 일주일은 바이칼>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낯선 언어로 둘러싸인 곳에서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다시 진격의 이스타나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부부의 여행일기와 아이의 그림일기로 생생하게 기록된다. 어느새 더운 공기로 가득 찬 열차를 타고 가면서, 다 찌그러진 덜컹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이 고생을 왜 사서 하고 있나라고 후회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바이칼의 한 가운데로 조금 더 들어가 보기 위해 두 아들이랑 1500루블을 주고 보트를 탔다. 아내는 금모래 위에 누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땅에서 물을 바라보다 이번에는 물에서 땅을 바라보니 우리가 몰랐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들게 마주했을 바이칼 호수의 광활함이 고생스러운 여정의 시간을 보상해주었으리라.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며 각자의 감상을 여행일기로 써보는 건 여행의 힘든 여정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렇다. 분리는 일시적이다. 결국 시간은 우리를 그곳으로 다시 데려다주고 만다."
일상과 분리되는 여행의 시간은 낯선 것과 불편한 것에 대한 순응을 필요로 한다. 바이칼 호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 낯섦과 불편함이 이제껏 나의 여행이 가진 것보다 유난히더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이 있다. 다음 여름 휴가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보면 어떨까 하는 위험한 상상도 해 본다. 나도 안다. 고생이 눈에 훤하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여행의 가진 힘을 믿는다. 바이칼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마주해보고 싶다.
2019.08.23. 일상의 여행을 꿈꾸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