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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Apr 23. 2020

[독서일기] 베를린, 박종호

베를린 여행을 꿈꾸다.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나도 모르게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똑똑.. 똑똑똑...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노크 소리에 놀라 멈칫하고 주위를 살핀다. 톡톡.. 톡톡톡... 어느새 빼꼼히 얼굴을 내민 꽃잎들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그리고 나의 일상도 모두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자가격리를 하느라 너에게 눈길 한번 주지 못했음을 나는 이제서야 알아차렸다. 눈이 빠지게 너를 기다리다가 불쑥 찾아온 코로나19를 만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바커스 커피>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 나는 여름휴가로 예약해 둔 베를린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책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2018년 봄, 남편이 독일로 짧은 출장을 다녀오면서 황금색 봉투에 담긴 커피콩을 1봉 사왔다. 알고 보니 100년 전통의 유명한 커피였고, 나는 말도 안 되게 웃기지만 향이 좋은 그 커피를 사러 독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독일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가질 무렵, 예술과 여행을 사랑하는 의사 박종호 작가의 문화 예술 여행 적 <뮌헨>을 만났다. 2019년 봄, 나는 정말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황금색 봉투에 담긴 그 커피콩을 샀고, 뮌헨을 중심으로 한 독일 남부 지역을 여행했다. 독일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독일만 간다고?", "독일은 볼 게 없는데" 였다. 나는 7박 9일동안 정말 독일만 여행했고,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미술, 클래식, 건축물 등 유럽의 예술 감성이 가득한 독일은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나라로 기억되었다. 남부의 작은 소도시들은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마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알고보니 실제 동화의 배경이 된 도시들도 많이 있었다.


철학의 도시, 동화의 도시, 역사의 도시, 전시회의 도시 등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독일, 나는 독일이 좋아졌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박종호 작가의 책 <베를린>이 출간되었고, 다시 한번 독일을 여행할 생각에 설레었다.


"높이가 서로 다른 기념비들이 마치 바람에 물결치는 억새처럼 느껴지는 콘크리트의 바다다. 이렇게 수도의 한복판에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며 기념비를 세운 나라는 독일뿐이다. 이런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며, 자신들은 반드시 변할 것이라는 독일인들의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장소다." 45p 


<무너진 장벽 위에서 태어난 유럽의 새로운 중심 베를린>

베를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높은 회색 장벽, 떠오르는 단어는 전쟁과 분단이었다. 책을 통해 미리 만난 베를린의 사람들은 나처럼 무채색 옷을 즐겨 입고, 다른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으며, 실용성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전쟁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당시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한 교훈으로 삼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나 전쟁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모습에 절로 존경과 신뢰의 마음이 들게 했다.


여행이란 그 도시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옛 모습이 보존된 현재에서 예전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지금 현재를 사는 사람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은 서유럽 5개국의 주요 명소만 빠르게 지나치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친절한 가이드의 어마어마한 설명이 뒤따랐지만, 기억에 남는 건 포토 스팟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과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가보기는 했다는 것이다. 그 후 한 나라에만 집중하면서 그 나라와 관련된 문학, 음악, 미술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 정보들 속에서 찾아낸 박종호 작가의 책은 신기루 같았다. 예술의 보고(寶庫)인 유럽이 늘 궁금한 건,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지 아닐까. 한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책 읽기와 한 나라에 집중한 유럽 여행의 경험이 더해져 나만의 의미 있는 여행의 길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지 고민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걸음걸이의 속도를 조금 더 느리게 하면 어떨까? 건물 한 채, 그림 하나도 천천히 본다면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은 특히 그 진가가 쉽게 보이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건물이나 박물관 뿐만 이나라 콘서트나 오페라도 한 편 보면 더 좋겠다. 공연 자체도 인상적이겠지만, 그 문화 현장에 뛰어들면서 참여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진정한 모습과 정신이 보인다." 33p


천천히 걸어보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어쩌면 일상을 떠난 짧은 여행의 시간 속에서 그 동안 가져보지 못한 관점의 변화를 만날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여행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 바닥에 걸터앉아,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구름이 지나가는 햇빛의 움직임을 느껴보고 싶다. 그렇게 나의 마음에도 무언가 모를 좋은 변화의 리듬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나는 정여울 작가의 책으로 여행에 대한 고민의 씨앗을 마음 속에 뿌렸고, 박종호 작가의 책으로 나의 여행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19와 그만 안녕하고 다시 한번 여행을 꿈꾸고 싶다. 


2020.04.03. 일상의 여행을 꿈꾸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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