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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May 21. 2020

[독서일기]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예술은 가까이에 있다

그림, 나의 마음에서 가장 거리가 멀었던 예술. 그림은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그린 것 말고는 그려본 기억이 없다. 나는 손재주도 없고, 그림을 못 그린다. 내가 어릴 적엔 주변에 미술관도 없었다. 지금처럼 미술을 즐길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굳이 찾아본다. 그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한다. 뭐랄까. 텅 빈 공간에서 액자에 담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림에서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했을까하는 사색의 찰나를 가져보기도 한다. 미술관을 나서면 왠지 나의 품격이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은 나만 드는 걸까.


아이는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즐겨한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잘 하고, 만들기는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우리는 관계자의 통제를 받았다. 유럽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방문지가 미술관이다. 아이와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미술관을 방문해 수업을 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여전히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전시된 그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미술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의 문턱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눈으로만 바라보는 활동에 그치도록 강요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미술, 음악, 문학을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접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감성이 조금 더 풍부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예술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어떻게 예술을 접해야 할까라는 물음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이번 여름에 책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를 읽고 예술과의 거리가 좁혀지면 나의 인생도 더 풍성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을 읽으면서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방구석 미술관>을 통해 그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책이 재미있다. 방구석에 엎드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편하다. 유명한 화가들의 숨은 이야기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평균 수명을 높인 장수의 아이콘 에드바르트 뭉크, 원조 막장드라마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빈센트 반 고흐, 테러를 일삼은 희대의 반항아 구스타프 클림트, 퇴사학교 선배 폴 고갱, 연애 찌질이 바실리 칸딘스키, 몰래카메라 장인 마르셀 뒤샹, 이렇게 화가들을 소개하는 제목부터가 격식이 없다. 게다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가는 로맨틱 풍경화의 대명사 클로드 모네이다. 당시 카메라라는 기계의 등장으로 그림보다 더 완벽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한 사각 프레임, 사진이라는 것이 혜성처럼 나타났고, 실제 초상화가 사진으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미술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모네는 카메라를 통해 빛이 있어야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과학적 원리를 깨우치게 되고, 빛을 중심으로 한 그림을 표현해내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인상주의, 모네의 그림을 보면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의 풍경을 아름다운 색감으로 담아낸 그의 그림이 참 좋다.  


“사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비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은 없다. 사물의 색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형은 없다. 사물의 형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209p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사를 뱉어냈다. 반 고흐의 그림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책장을 들춰보니, 역시 모네와 고흐는 인상주의(빛과 색에 대한 화가의 순간적이고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impression)을 표현)라는 같은 사조(장르)를 표방한다. 나는 글도, 그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모습에서 크게 감흥을 받는다는 걸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모네의 그림이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에, 자연스러운 빛이 더해지는 순간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에 행복의 빛이 더해진다. 이런 것이 그림이 갖는 힘일까? 집에서도 품격 있게 예술을 접할 수 있으니 책의 위대함이란 말해 무엇 하리. 편독을 했던 나의 책 읽기도 독서일기를 통해 한층 더 풍성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작품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객을 관객이 아닌 창조자로 보았죠. 그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기보다 의미를 열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전시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생각의 놀이터’가 됩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의 놀이를 펼치는 창조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326p


뒤샹의 미술에 대한 생각이 참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예술을 만들어가는 생각의 놀이터, 관객이 그림을 보고 각자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모습에서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뒤샹은 한 인터뷰에서 “예술가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에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화가가 아닌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삶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예술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예술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책을 읽고 독서일기를 쓰는 나도 예술과 함께 숨쉬고 있다. 독서일기도 꾸준하게 쓰는 연습과, 함께 독서일기를 쓰는 사람들과의 나눔이 더해져, 책을 마주하는 나의 관점이 더 탄탄해지고, 생각의 나이테도 더 촘촘해져서, 나의 글 쓰기도 더 좋아지리라 믿는다. 예술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2018.09.21. 일상을 여행하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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