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영구와 맹구는 내가 어린 시절 배꼽 잡고 웃던 개그 프로그램의 캐릭터이다. 바보 분장이나 흑인 분장이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요즘은 차별에 대한 문제가 즉각 사회적으로 대두된다. 작가는 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이다. 그런 자신이 혐오표현에 관한 공개 토론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썼고, 토론회가 끝나고 참석자 중 한 분에게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냐는 질문을 받았다. 혐오표현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던 자신이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한 모순에 대해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코레일 채용에 ‘사딸라’라는 지원자가 서류 합격을 해서 이슈가 되었다. 통과할 지 몰랐다는 지원자는 햄버거 광고의 ‘사딸라’ 라는 이름을 써서 블라인드 채용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그냥 지원해봤다고 했다. 채용에 있어 불필요한 정보를 가려 선입견을 없애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직무 수행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출신지, 학력, 성별, 종교, 가족관계 등 채용과정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항목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7~8년 전 공채 서류 전형을 하면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입사지원서가 여러 건 등록된 경우를 경험한적이 있다. 입력한 정보들이 차이는 있었지만 이름도, 사진도 충분히 이상한 입사지원서였다. 대량의 입사지원서가 등록되는 시스템의 오류를 의심했지만 며칠 후 뉴스를 통해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서류 전형 합격의 커트라인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는 황당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서류 전형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객관적인 항목들이 공정함의 잣대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준비한 자격들을 가리고 평가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누군가에게는 공정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일 수도 있다.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학점은 학교에 따라 기준이 달랐고, 토익 점수도 청각 장애인에게는 공정하지 못한 기준임을 이제야 알았다.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많은 기준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110p
회사에서는 군필 여부에 따라 연봉에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입사 후 4년이 지나면 그 차이가 사라졌으나 지금은 그 차이를 두고 임금인상률을 적용한다. 동일한 승진에 동일한 보상을 한다는 목적이었고, 변경된 제도는 새로 입사한 직원들부터 적용하고 있다. 새로 입사한 직원 중 한 명이 변경된 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으나 수용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한 직원은 석사 졸업자로 학사 졸업자보다 수당을 더 받고 있고, 승진에서도 1년 유리한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그 직원에게 다른 직원보다 학력이 높아서 받은 차별은 나에게 유리하니 당연한 것이고, 군 경력에 따른 차이는 나에게 불리하니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직원의 이의 제기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직원은 여전히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도의 불합리를 주장한다.
"문제는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 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기울어진 공정성을 추구한다." 37p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 남성의 권리가 줄어드는가? 성 소수자의 권리가 신장되면 비 성 소수자의 권리가 줄어드는가? 난민을 지원하면 국민에게 손해인가? 정말 그런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의 가능성은 없는가? (204p)” 우리는 생활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러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했던 차별에 대한 생각이 내 안에도 많이 잠재되어 있음을, 나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알아차린다. 차별에 대한 생각들이 책 <공정하지 않다>를 읽으면서 가졌던 ‘공정함’에 대한 질문과 교차되면서 차별은 나쁜 것인가? 차별하지 않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가져본다.
2019.10.25. 즐거운 일터를 만들고 싶은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