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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Jul 13. 2020

[독서일기] 친구에게, 이해인수녀

오늘은 친구를 기억해본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내가 사막에 있을 때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나무 그늘이 되어주고, 꽃이 되어준 친구야.


오늘처럼 빗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날 차분히 읽으면 좋을 책, 빗소리를 음악 삼아 그림을 따라 읽어가는 것도 참 좋다. 


내 인생 첫 친구

요즘은 백일만 지나도 어린이집을 다닌다. 내가 어릴 적에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일하는 엄마 덕분에 나보다 한 살 어린 옆집 소꿉친구 창민이와 3년을 같이 유치원을 다녔다. 창민이와 자동 연필깎이에 창민이 누나 연필을 몽땅 다 넣어버리기도 했고, 딱지놀이, 구슬치기,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여름이면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하는 매미를 잡으러 다녔고, 같이 모기차도 많이 따라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 경찰서까지 갔던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창민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감정을 나누던 사춘기 교복 친구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주변에 논, 밭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대도시도 아니었다. 나는 한 건물로 되어 있는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6년동안 같이 다닌 친구들이 많았다. 중3때부터는 야간자율학습도 있어서 하루 온 종일 친구들과 같이 있는 셈이었다. 당시 나는 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좋은 글귀들을 보면 예쁜 색깔의 종이에 프린트해서 그것을 돌돌 말아 리본을 묶어 친구가 등교하기 전에 책상 위에 올려두곤 했었다. 쉬는 시간에 같이 도시락을 먹었고, 매점으로 뛰어가 떡볶이에 핫바를 사먹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서로 엽서나 편지도 자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함께 웃고 수다를 나누던 친구들은 어느새 엄마가 되었고 얼굴을 못 본지도 긴 세월이 흘렀다.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나는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18년째 근무를 하고 있다. 신입사원들이 1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 가장 힘든데, 나 역시 그랬다. 중국 프로젝트 번역 업무를 위해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고,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 시간을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계약직이어서 소속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제조업이 갖는 보수적인 문화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퇴사 면담을 3차례 하면서, 4달만에 정규직이 되었고, 나에게도 업무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팀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고,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중 J는 아직도 같이 일하고 있는데, 내 직장 생활에서 가장 고마운 친구다. 내가 아직까지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는 건 J의 도움이 가장 컸다. 일이 많을 때도, 근무시간이 늦을 때도 많은 시간을 그 친구와 함께 했다.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아도 늘 마음으로 고마운 친구다. 


인생을 함께 만들어가는 친구

남편과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지 벌써 12년차,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남편과는 땅콩처럼 둘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친구처럼 살아간다. 여전히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를 감정을 배려하면서, 덕분에 서로에게 가장 편안하면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언젠가 “엄마, 아빠는 왜 안 싸워?”라고 아이가 물어볼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화낼 일이 없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갖고, 또 가족이 함께 하는 취미생활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방학이면 같이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게 되면 평생 나의 짝궁인 남편과 둘이 유럽의 소도시를 천천히 여행하고 싶다. 각자 배낭 하나 메고, 손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가면서. 각자가 잘 살아내 준 시간들을 토닥이면서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절감하는 날들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또 누군가 나의 친구가 되는 기쁨이야말로 살아서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일 것입니다. 


2020.07.13. 어른이 되어가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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