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날 Aug 22. 2021

[독서일기]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임승수

아직은 와인과 밀당중입니다만

햇볕이 뜨거웠던 7월 어느 날, 동네 책방에서 와인에 몹시 진심인 작가, 임승수님의 북토크가 있었다.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한 인상, 구수한 말투, 그리고 재미있는 생활 와인 이야기가 해졌다. 북토크 내내 한참을 웃었다. 와인 그까이꺼 별로 까탈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를 듣고는 시원한 와인 한 잔을 입 안 가득 머금어 알코올 찐맛을 알지 못하는 혀의 감각을 톡톡 깨우고, 워터파크에서 슬라이드를 타 듯이 나게 목구멍으로 꿀~떡 삼는 상상을 해본다.


과는 천생적으로 가까이할 수 없는 DNA를 가진 이유도 있지만, 와인은 왠지 모르게 범접하기 부담스러운 화려함과 교양 넘치는 우아함 그 어디쯤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 살면서 내 혀는 단 한 번도 와인을 마고 싶다는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입 안에서 휘모리장단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극지방 오로라와도 같은 맛과 향을 느꼈다는 작가의 말에 그런 나도 솔깃해졌다. 어쩌면 나도 와인 한 모금에 그런 환상적인 세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와인에 몹시 진심인 작가의 책은 북토크 못지 않게 정말 쉽고 재미있었다. 거기에다 우아한 와인세계를 별로 어렵지 않게 접하니 교양의 온도도 살짝 뜨거워지는 것 같다. 와인 라벨을 읽는 방법도 반복해서 설명해주니 호텔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와인병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설명을 들었으니 이제는 와인을 따를 차례인가. "버터를 두른 뜨거운 프라이팬에 5분 가량 못살게 군 다음 푹신하면서도 탱탱한 그 모순된 질감을 사르도네에 곁들여서 옹골차게 탐닉해 줄 심산이었다.(52p 전복 굽는 장면)", 마내가 와인 한 잔을 따라두고 프라이팬 위에 전복을 올려 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와인 맛에 감탄할 줄은 몰랐지만 작가의 표현력은 나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넘치도록 충분했다.     


좋아한다는 것은 일종의 돌발사고라며 내돈내산 내 혓바닥으로 검증한 와인을 추천하는 작가는 정말 와인에 몹시 진심이었다. 나는 과연 나를 위해 몹시 진심인 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어울리지 않게 가을 옷을 입은 8월, 작가의 가을에 대한 표현에 나는 몹시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가을을 이렇게 끄집어내다니. 가을이 오면 꼭 브람스 음악을 들으면서 우아하게 와인 한 잔 머금어 보리라.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기관으로 포착하는 정보를 통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렇다면 여름에서 가을로의 계절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러울 정도로 파란 하늘, 그 아래에서 울긋불긋 패션쇼를 벌이는 산등성이, 이른 아침 살갗을 스치는 영상 8도의 싸늘한 대기, 시각과 촉각을 담당하는 생체기관은 이러한 정보를 포착한 후 전기신호로 변환해 뇌로 전달한다. 뇌는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연산을 거쳐, 차곡차곡 저장된 개념 중에서 '가을'이라는 특정한 단어를 끄집어낸다. 254p



2021.08.21.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일기]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